1957년 3월6일 아프리카 서부의 영국 식민지 골드코스트(황금해안)가 가나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1830년대 영국 상인들의 진출과 함께 이 지역의 부족국가들이 영국 보호령이 된 지 120여년 만이고, 1874년 영국의 골드코스트 식민지가 확립된 지 80여년 만이다. 가나라는 국명의 기원이 된 가나제국은 4세기에서 13세기까지 오늘날의 말리 서쪽에 있었다고 전하는데, 가나의 역사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가나는 독립 세해 뒤인 1960년 국민투표를 통해 국호를 가나공화국으로 선포하고 콰메 은크루마를 초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아시아 순방 중의 은크루마를 실각시킨 1966년 2월의 군사 쿠데타 이후, 가나는 짧은 민간 정부와 긴 군사정부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야당 후보 존 아제쿰 쿠퍼를 대통령으로 뽑은 2000년 12월의 선거를 통해서야, 가나는 독립 이래 처음으로 민간 정부에서 민간 정부로 정권이 이양되는 경험을 했다.
가나는 동쪽의 토고, 북쪽의 부르키나파소, 서쪽의 코트디부아르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해안이 약 1,000㎞에 이르는데, 이 해안의 이름이 바로 황금해안이다. 15세기 말 이래 유럽 식민주의자들과 상인들은 세네갈에서 가봉 부근까지의 아프리카 서해안을 자신들의 장사 품목에 따라 불렀다. 시에라리온의 후추해안, 코트디부아르의 상아해안, 토고와 베냉의 노예해안 따위가 그 예다. 후추가 '낙원의 곡물'이라고 불렸던 터라, 후추해안을 곡물해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이름들 가운데 어떤 것은 독립 뒤의 국호가 되기도 했으니, 상아해안을 뜻하는 프랑스어 코트디부아르(영어로는 아이보리코스트)가 그 예다. 가장 슬픈 이름은 노예해안일 것이다. 16세기 이후 두 세기 동안 베냉의 위다는 서아프리카 최대의 노예수출항이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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