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하지만 성실하고 올곧은 사람이에요."아나운서 황현정(32)씨가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인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李在雄·35) 사장에 대해 표현한 말이다. 이 사장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한 마디일 듯 싶다. 실제로 그는 무뚝뚝하다. 약간 처진 눈꼬리와 빠르게 내뱉지만 딱딱 끊어지는 말투, 수식어 하나 없이 정확히 할 말만 하는 그와 대화하다 보면 '공대 출신 CEO'라는 느낌이 온다. 한 마디 툭 던지면 청산유수처럼 자신의 경험을 줄줄이 풀어 놓는 언변 좋은 CEO와는 분명히 다르다. "전 주관식은 약하거든요. 단답식으로 질문해 주세요"라고 부탁까지 한다. 부인에게 프로포즈할 때조차 '우리 결혼하자' 한 마디가 전부였다니 무뚝뚝한 건 천성인 듯하다.
그러나 이 사장은 '성실하고 올곧은 사람'이라는 평도 듣는다. '올곧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주장이 강하고 고집스럽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일단 무언가를 결정하면 끝까지 추진하는 '뚝심'을 발휘하는 그의 경영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다. 프랑스 유학 시절 인터넷 비즈니스를 하자고 결심한 이후, 국내에서는 아직 인터넷이 거의 보급되지 않았던 1995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인터넷 비즈니스 하나만 끌고 나가고 있는 것이 하나의 예다.
1999년 11월 최고의 타이밍에 코스닥에 등록한 후, 그는 한때 주당 27만원에 달했던 주식을 팔지 않고 유상 증자도 하지 않았다. 2000년 초 다음이 최고 주가를 연일 경신하던 때에도 "우리 사업의 '실체'가 아직 없는데 지금 파는 것은 잘못"이라고 고집했다. "실체가 생긴다면 우리 주식의 가치는 27만원보다도 더 나갈 것"이라던 당시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그의 '뚝심'이 가장 크게 발휘된 곳은 온라인 우표제였다. 밀려드는 스팸메일 때문에 한메일 송신률이 80%까지 떨어지고 이용자들의 불만이 폭증하자, 대량으로 메일을 전송하는 사업자에게 요금을 내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반대하는 업체들은 협회까지 결성해 대항했고 언론도 고운 눈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밀어 붙였고 그 결과 스팸메일도 줄고 메일 송신률도 정상화했다. 월 매출은 1억원 정도로 미미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던 서버 및 회선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지난해 다음이 흑자를 달성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CEO'란 이미지는 자칫 독재자처럼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외치며 몸소 실천해 온 CEO로 유명하다. 프랑스에서 공부하면서 교수와 학생이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데 큰 감명을 받았다. "직위를 넣어서 서로를 부를 때부터 둘 사이에는 상하 관계가 생기면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해집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에서 새로운 호칭 제도를 만들었다. '김OO님' '박XX님' 식으로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 부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름 뒤에 '씨'자만 넣어서 불렀습니다. 하지만 다음이 커지니까 다른 곳에서 나이 드신 분들도 오셨는데 이런 호칭을 불편해 하는 것 같아서 '님'으로 바꿨죠."
다음의 또 다른 특징인 '위원회 제도'도 수평적 의사 결정을 위한 것이다. 다음에는 서비스 위원회, 기술 위원회, 경영 위원회 등 팀장급 이상 직원들이 모인 위원회가 여럿 있다. 여기에서 참석자들은 모두 동등한 발언권과 1표 행사권을 가지고 현안에 대해 논의한다. '경영 위원회'에서 이 사장은 단지 1표만 가질 뿐이다. 사장이 하겠다는 데 반대가 가능하느냐는 질문에는 "내 의견이 거부된 적도 꽤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벤처다운 이러한 경영 방식으로 그는 초창기 최고의 포털사이트였던 야후를 누르고 다음을 국내 1위 포털사이트로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NHN 등과 함께 투자자들에게 인터넷 비즈니스가 '돈 된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사장은 고집스런 성격과 속마음을 그대로 털어놓는 직선적인 말투 때문에 가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러나 극단적 희망과 절망의 순간들을 겪어 온 인터넷 비즈니스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원동력이 그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패기에서 나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글=최진주기자pariscom@hk.co.kr
사진=배우한 기자
■감명받은 영화/ "노암 촘스키와 미디어"
집 근처에 대형 영화관이 있어서 나는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간다. 영화 감상은 대학 시절부터 나의 일부분이었다. 그 중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화는 1995년 프랑스 유학시절에 본 '노암 촘스키와 미디어'(원제 : Manufacturing Consent - Noam Chomsky and the Media)'이다. 마크 아크바(Mark Achbar)와 피터 윈토닉(Peter Wintonick)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이 시대의 손꼽히는 지성인 노암 촘스키의 미디어관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매스 미디어가 '여론'이라 불리는 사회적 동의를 만들어 내는 구조를 밝히는 게 주된 내용이지만, 독립 미디어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분야까지 망라한 다양한 지식과 속도감 있는 진행 덕분에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다. 물론 1992년 작품이라 인터넷에 대해서는 언급돼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나는 '인터넷'이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와 관련된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간이 흘러 정말로 인터넷은 그러한 미디어가 됐다. 올해부터 다음이 '미디어다음'을 오픈하면서 네티즌들에게 생각과 토론의 장을 제공하게 된 것도 그때 본 이 영화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ㅁ■내가 본 이재웅/권위보다 격론 즐겨 숫기없는 야생마
이재웅 대표를 지칭하는 수많은 찬사들이 있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대표주자, 인터넷 업계에서 최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사, 미래 정보 사회의 리더 등등. 인터넷 비즈니스의 토양이 척박했던 1995년에 단돈 5,000만원으로 인터넷 서비스 회사를 설립하고 세계적 브랜드 야후와 대항해 1등 포털 회사를 일궈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가까이서 바라본 그의 모습은 다소 의외의 부분들이 있다.
그는 너무 숫기가 없다. 또 사업분야를 다소 과장되게 포장하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싫어한다. 비즈니스맨으로서의 기본 소양이 부족하다고 할 정도다. 그는 사내에서 인트라넷을 통해 말단 직원들과 격론을 벌인다. 그러다가 토요일 오후 갑자기 "피자를 쏩니다"라는 글 하나로 직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엉뚱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가 존경 받는 CEO라기보다는 친근하고 논쟁을 벌일 만한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아직 미완의 대기처럼 보인다. 나는 아직까지 그가 해낸 것보다 해낼 것이 더 많을 것으로 믿는다.
비즈니스에서의 가다듬어지지 못한 야생마 같은 그의 행태는(필자는 내심 가다듬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를 역동적으로 개척해 나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창의력과 추진력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남들이 그렇게 신경 쓰고 있는 형식이 그에게는 하찮은 것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
사내 말단 직원들과도 눈높이를 같이하고 토론하는 열정도 네트워크와 커뮤니케이션의 힘을 믿는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행위일 것이다. 그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이 조직의 역동성을 키운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김 현 영 다음커뮤니케이션 컨텐츠 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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