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 영화인들은 낭만적인 영화 배경, 뉴욕의 명성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러나 비록 스크린에서 더 이상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은 볼 수 없지만 최근 미국 영화가 뉴욕에 바치는 애정은 더욱 각별해졌다.미국 최대의 영화정보 사이트인 IMDB의 자료에 따르면 9·11 이후 뉴욕에서 촬영한 영화나 TV 드라마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2000년 뉴욕에서 촬영된 TV 드라마와 영화는 160편, 2001년에는 161편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79편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촬영 편수만 늘고 있는 게 아니라 뉴욕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많아지고 있다. 우디 앨런의 고급 코미디의 배경이 됐던 뉴욕은 최근 신데렐라 이야기의 무대로서 각광 받고 있다.
'러브 인 맨하탄'(Maid In Manhattan)은 뉴욕의 특급 호텔에서 근무하는 여급이 상원의원 후보를 만나 신데렐라가 된다는 내용의 로맨틱 코미디로 유서 깊은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루즈벨트 호텔 등을 배경으로 '뉴욕'을 부각한다. 주인공 제니퍼 로페즈는 뉴욕 빈민가인 브롱크스에서 자란 푸에르토리코 이민 2세로 실제로 미 연예계의 '신데렐라'이다.
'투 윅스 노티스'(Two Weeks Notice)에서 뉴욕시는 운동권 변호사와 속 빈 부동산 재벌을 연결하는 중요한 모티프. 뉴욕 브루클린 남쪽 코니 아일랜드의 시민회관 철거 문제로 만난 두 사람은 영화 내내 토닥거리지만 헬리콥터를 타고 뉴욕을 내려다 보며 뉴욕의 아름다움과 자본주의의 미덕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뉴욕 홍보 영상물 같다는 인상을 줄 정도다. 비용 문제 때문에 캐나다에서 촬영하려고 했으나 제작자이자 주인공인 산드라 불럭의 고집으로 뉴욕에서 촬영한 이 영화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철탑 구조물의 비밀과 함께 월 스트리트의 브루클린 다리 아래 부둣가인 풀턴 랜딩, 사우스 스트리트 항구 등 뉴욕의 풍경을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세렌디피티' '섬 원 라이크 유' '뉴욕의 가을' 등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영화 뿐 아니라 만화를 원작으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뉴욕이 자주 배경으로 등장한다. 뉴욕 브로드웨이 5번가의 대격돌을 방대한 스케일로 시각화한 지난해 '스파이더 맨'에 이어 올해는 '데어 데블'(미국 2월9일 개봉)이 방대한 액션 속에 뉴욕을 배치했다.
뉴욕이 이처럼 영화의 배경으로 각광 받는 것은 다인종 다문화 도시이자 빈부 격차가 가장 큰 도시이기 때문이다. 1860년대의 역사를 재현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에서 보듯 뉴욕은 인종과 민족의 전시장이어서 일단 영화 속에 다채로운 사람들의 삶을 그릴 수 있다. '투 윅스 노티스'에서처럼 핫도그 하나에 100달러를 내고 사먹는 자본주의의 귀족 옆에 몇 센트를 구걸하는 홈리스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엄청난 빈부 격차는 신데렐라 탄생의 절대 조건이다. 도회적 스타일의 상징, '뉴요커'의 옷이나 장신구, 라이프 스타일도 주인공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소. 결국 미국 영화가 '신데렐라' 이야기에 몰두할수록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더 많이 생산될 수밖에 없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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