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사상 처음으로 비구니가 총무원 집행부 최고위직인 부장에 올랐다. 남녀차별이 엄격한 1,700년 한국 불교 역사에서도 극히 이례적이다.4일 법장(法長) 총무원장으로부터 문화부장 임명장을 받은 탁연(卓然·54·사진)스님은 "별 일이 아닌 줄 알고 수락했는데 축하 전하가 쇄도하는 걸 보니 큰 일을 저지른 것 같다"며 "개인이 아니라 비구니의 일원으로서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스님은 수원 봉녕사의 비구니 승가대학에서 8년간 강사를 하다가 연초부터 6개월간의 휴가를 얻은 참이다. 나흘 전 전국비구니회(회장 광우 스님)로부터 "문화부장 소임을 맡아 달라"는 말을 듣고 "살짝 가서 일만 하면 되겠지"하는 생각에서 쉽사리 수락했다.
그는 학승이다. 1983년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 릿쇼(立正) 대학에서 10년 동안 유식학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고 96년 귀국 이후 주로 강사 생활을 해 왔다. 종단에 분규가 빚어질 때마다 "스님들이 자기 신분을 벗어나지 않으면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테데…"라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봤을 뿐 종단 일에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문화부장 일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것도 공부라고 생각하고 해 보겠다"고 말했다.
비구와 비구니 스님의 차별에 대해서는 "부처님 당시부터 100세 비구니가 3세 비구에게 절하도록 했는데 부처님 법이 그러니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밝혔다. 그러나 "비구니가 할 만한 일을 못하게 할 때는 반발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행정도 그런 일의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고성이 고향인 스님은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어머니가 해인사 약사암으로 출가하자 6살의 나이에 출가를 결심, 고교 졸업 후 69년 해인사 국일암에서 현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어머니는 동화사 내원암 선원장으로 있는 벽해(碧海·73) 스님. 문화부장 소임을 맡고 찾아갔더니 "안 하면 안 되나"라고 걱정스러워 했다.
법장 총무원장과는 학인 스님들과 여행을 하다가 수덕사에서 점심 공양을 함께 한 인연이 전부다. 청담 스님의 딸로 봉녕사 주지인 묘원 스님과는 사제간이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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