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이나 되는 예비 법조인의 대표격인 사법연수원 자치회장을 여성이 처음으로 맡았다.의류학도, 가정주부를 거쳐 13년이란 짧지 않았던 시간을 사법시험 공부에 쏟아 지난 해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박춘희(49)씨가 주인공. 박씨는 전통적으로 최연장자가 자치회장을 맡아온 관례에 따라 사법연수원 34기 회장이 됐다. 박씨는 합격 당시에도 지천명(知天命)을 앞둔 나이 등 남다른 이력으로 화제가 됐다.
박씨는 5일 "연수원 개혁 없이는 검찰과 법원의 개혁도 없다"며 "검찰과 법원의 서열문화가 연수원 시절의 '시험 성적'에서 비롯되는 만큼 연수원부터 바뀌어야 근본적인 사법개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배우는 입장이지만 연수원 교육체계를 합리적으로 바꾸도록 노력하겠다"고 당당하게 자치회장의 포부도 밝혔다.
자치회장은 밖으로는 972명의 연수생을 대표하고 안으로도 동기들을 위해 궂은 일을 도맡아야 하는 만큼 쉽지않은 자리다. 하지만 동기들은 오래 전부터 박씨에 대해 "최연장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활달한 성격이 자치회장에 적격"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장자인데다 사람 사귀기를 좋아해 연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누나이자 때로는 언니로 따르는 동기들이 적지않았다.
부산대 의류학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뒤 잠시 직장생활을 했던 박씨는 1980년 결혼하면서 10년 동안 평범한 주부로 생활했다. 그러다 불혹(不惑)을 바라보는 90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사법시험 도전을 시작했다. 고생만 하고 합격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했지만 "오갈 데 없는 아이들과 노인 등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던 대학시절의 꿈을 영영 포기할 순 없었다고.
각오는 했지만 합격하기까지 과정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1차 시험에서 3번, 2차 시험에서 6번 등 모두 9번이나 낙방의 고배를 맛보았다. 그 사이 13년의 세월이 지나갔고 마침내 지난 해 사시 최고령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박씨는 연수원을 마치면 당초 계획한 대로 소외계층을 위한 공익변호사로 활약할 생각이다. 연수원에도 자신이 걸어온 인생경험을 토대로 새 바람을 불어넣을 작정이다. "올바른 법조인이 되고 사법개혁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들을 연수원에서부터 배워 나갈 겁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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