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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만화] <1> 코주부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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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만화] <1> 코주부 삼국지

입력
2003.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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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문화연구원 손상익 원장이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다시 보는 우리만화'를 매주 연재합니다. 우리만화의 맥을 이어 온 대표적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통해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사람 사는 모습을 되돌아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 나라가 죽기살기로 전면전을 치를 때 그 결과는 참으로 비참하다. 1950년 한국전쟁은 지금도 '살아있는 악몽'이다. 당시 어린 청소년들의 가녀린 영혼에는 그 얼마나 짙은 피멍이 박혔을까.

그 와중에 청소년들의 가슴 한 구석을 살포시 다독여 준 만화가 있었다. 화약 냄새가 진동하던 1952년 11월 학생잡지 '학원'에 연재된 목정 김용환(金龍煥·1912∼1998)의 '코주부 삼국지'이다.

삼국지의 유비나 관우, 장비의 모습이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만화 캐릭터로 등장했다. 당시의 역사소재 만화 대다수가 한 칸을 반으로 나누어 깨알 같은 고어체 지문과 설명으로 채워 넣은, '그림 소설'이었던 데 비해 '코주부 삼국지'는 등장인물이 '말 풍선' 속의 대화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근대적 만화 형태를 띠었다. 글이 아니라 캐릭터의 표정과 동작, 그리고 말투가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했다.

이런 만화적 재미는 상당한 파격으로 어린 세대의 구미를 자극했고 학원은 1만권이 넘게 팔리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100환(현재의 10원)으로 꽤 비싸서 있는 집안 아이들이 주로 구독했지만, 또래의 아이들이 모두 돌려봐 책갈피가 너덜너덜해지곤 했다. 줄잡아 당시 중고생의 절반이 넘는 20만∼30만 명이 이 만화를 보았고, 이들은 후에 '한강의 기적'을 일군 세대로 성장했다.

1960년대의 인기 아동만화가로 활동한 이행남(60·원 캐릭터 대표)씨는 "지금 보아도 캐릭터들이 아주 세련됐다"며 "미술적 구도도 완벽해 어린이 뿐만 아니라 만화가를 꿈꾸던 예비 작가들에게도 교과서 역할을 했다"고 기억했다.

김용환은 20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데이코쿠(帝國) 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기타코지(北宏二)란 필명으로 소년잡지 '니혼쇼넨(日本少年)'의 삽화작가로 활동했다. '코주부' 캐릭터는 1942년 재일동포를 상대로 발행된 '도쿄조선민보'의 시사만화에서 처음 등장했다.

해방 직전 귀국한 그는 좌익 성향의 일간지 등에 시사만화를 게재하는 등 1세대 직업만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1946년에는 최초의 어린이 만화 단행본 '토끼와 원숭이'도 냈다. 정밀한 펜 터치의 삽화는 물론 동양화 풍의 붓 그림, 만화체 선화(線畵) 등에 고루 출중한 실력을 보였다.

'한국대표 만화가'로 많은 작품을 남긴 그는 그 후 민단계 신문 '통일일보'에 시사만화를 연재하는 등 만화가로서의 활동을 계속했다. 1995년에는 미국으로 이민, LA근교에서 만년을 보내다가 1998년 12월1일, 8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만화는 지금도 장·노년층 독자에게 전쟁의 포연에서 피어난 한줄기 꿈과 희망으로 회억(回憶)된다.

/손상익(한국만화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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