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집들이에서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났다. 한 친구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요새도 계속 영화평 쓰냐? 영화를 통 안 보니 관심이 없어서." 다른 놈이 거든다. "다 그렇지 뭐. 비디오나 때리는 거지." 어이구 이 자식들아, 너희들이 술 퍼 마시며 삶의 무게를 잊으려 허덕이고 있으니, 정신연령 20대 초반에 맞춘 영화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냐고 말하려다 참았다.20대 초반을 주 타깃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스타들의 수명이 길다. '어바웃 슈미트'(사진)의 주연은 66세의 잭 니컬슨이다. 영화 속에서도 같은 나이의 막 퇴직한 보험회사 중역 워렌 슈미트로 나온다. 할아버지라고 한 수 접어줄 필요가 없는 게, 연기의 기운이 팽팽하기로는 고래 힘줄 같고 막 나가기로는 저우싱츠 뺨치기 때문이다. 잭 니컬슨이 연기하는 슈미트는 막상 퇴직하니까 정말 할 일이 없고, 지겨웠던 마누라가 급사하자 삶은 더 심심해진다. 그러고 보니 슈미트는 주위사람에게 사랑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저 혼자 즐기는 재미에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생과 가정의 중요성을 깨닫는 훈계조로 '어바웃 슈미트'가 흐르는가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배우의 전 경력을 괴짜 아웃사이더의 매력으로 채운 대배우 잭 니컬슨은 괴팍한 노인네의 연기가 얼마나 흥겹고 동시에 쓴 여운을 남길 수 있는지를 이 한 편으로 증명한다. 역시 명배우다. 강력 추천!
'언디스퓨티드'의 감독 월터 힐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꽤 잘 나가던 감독. 그렇게 잘 나가던 감독이 어디까지 몰락할 수 있는지 반면교사라도 하려고 작심한 듯이 말년에 형편없이 망가지고 있다. '드라이버' '롱 라이더스' 등의 초기 걸작은 물론이고 '48시간' 류의 흥행작에 이르기까지 감독이 보여주었던 저력을 이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썩어도 준치'라고 '언디스퓨티드'는 전체적으로는 평범하지만 클라이맥스의 권투장면만은 관객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우람한 체구에 적당히 폼을 잡는 흑인 액션 스타 웨슬리 스나입스의 매력도 킬링 타임용으로는 무난하다.
'엠퍼러스 클럽'은 좀 덜 된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할까. 선한 의도로 만들어진 정석 드라마다. 한 편 더! 이미 개봉됐지만 마틴 스콜세지의 '갱스 오브 뉴욕'은 미국 사회의 폭력의 뿌리가 뭔지를 제대로 파고든다. 스펙터클로 치장한 영웅담을 기대하는 이들은 보지 마시라. '인간의 조건'에 대한 박력 있는 탐구를 흥미로워 할 독자 제위에게는 무조건 추천한다.
/영화평론가 hawks@film2.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