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20만의 평양은 서울과 비교해 볼 때 없는 게 많다. 우선 승용차가 적고 교통신호등이 없고 쓰레기가 없다. 도시는 물론 지방까지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은 구호와 포스터이다. 평양은 공기가 맑다. 보통강변 호텔 앞에서 들이 마시는 아침 공기는 늘어선 수양버들의 멋과 어울리며 상쾌하기 그지 없다. 서울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느낌이다.하지만 강의 오염은 좀 심한 편이다. 평양 서쪽에서 대동강과 합류하는 보통강은 언뜻 보아도 탁하고 부유물이 많다. 아직 쌀쌀한 기온이지만 녹조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서해갑문이 강의 원활한 흐름을 차단한 이유도 있지만 하수가 제대로 정화되지 않고 배출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은퇴 후 대동강에서 소일 삼아 낚시를 즐기는 평양 노인들의 가장 큰 불만은 "요즘 고기가 잘 안 잡힌다"는 것이다. 대동강변에서 만난 60대 노인도 "서해갑문으로 대동강 물이 고이면서 오염이 심해 재미를 못 본다"고 말했다. 1986년 완공된 이 갑문으로 대동강 숭어가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북한 고속도로에서 차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은 첫 방문자에게 깊은 인상으로 다가온다.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4시간 왕복하는 동안 길에서 본 차는 10대 미만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군용 트럭이었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완전 보장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해는 가지만 개성직할시 내에서조차 자동차를 보기 힘든 것은 의외였다. 마침 남쪽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 소식이 전해지자 "이런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자동차 보급을 확대하지 않고 있다"고 안내원은 말했다.
평양-개성 고속도로변의 농지들은 매우 잘 정리되어 있었다. 원래 땅이 그런지, 체계적인 객토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농지들은 대부분 누렇게 비옥했다. 농한기라 일손을 놀리는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지만 일찍 논밭갈이에 나선 사람 몇몇은 소를 부려 논일을 감당하고 있었다. 가끔 땔감용으로 짐작되는 나뭇짐을 힘겹게 지고 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농촌의 가옥들은 대체로 5∼1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연립주택 형이었고 단독 주택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남한의 명산들이 등산객으로 적지 않게 오염된 데 비한다면 북한의 산은 사람의 때를 덜 탄 모습이다. 국립공원 초입마다 팔도 식당들이 장마당처럼 늘어선 모습을 평양에서 북으로 1시간 30분 달려 도착한 묘향산에선 찾을 수 없었다. 산 입구의 향산호텔에서 내놓은 칠색송어튀김, 돌버섯, 산채곱돌장(10가지 산나물을 넣어 끓인 국)도 정갈했다. 묘향산 계곡은 지금도 칠색송어가 잡힐 만큼 깨끗하다고 한다.
묘향산은 금강산의 수려함과 지리산의 웅장미를 함께 지녔다. 등산하지는 못했지만 멀리 보이는 비로봉 정상(1,909m)이 눈을 이고 있다. 산 이름처럼 향나무가 많았다. 산의 초입에는 숙박시설들이 제법 있었고 여름과 봄가을에는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온다고 한다.
묘향산에서 명찰 보현사를 방문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서산대사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한 이 절은 1042년 창건 당시 243칸 30여 채이던 건물이 한국전쟁을 거치며 절반 정도 불탔지만 보현사비, 석가여래탑, 관음전 등 국보가 수두룩하다. 절은 잘 복원되어 있었다. 북한의 명승고적을 갈 때마다 해설강사(안내원)는 가장 먼저 수령님과 장군님이 언제 이곳을 방문해서 복원과 지시를 했는지부터 설명한다. 보현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측이 묘향산에 데려간 것은 사실 산 입구에 웅장하게 서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외국 국가원수나 기업체, 명사들이 보낸 선물을 유리벽에 전시한 두 채의 건물이다. 건물은 바닥과 천정은 물론 벽이며 심지어 계단 난간까지 온통 국내산 화강암으로 화려하게 지었다. 안내원은 선물 하나를 1분씩만 구경해도 1년 반이 걸린다며 두 지도자에게 바친 전 세계의 '경의'를 강조했다.
평양 외곽의 국조 단군릉과 고구려 시조 동명왕릉은 보존 상태가 뛰어났다. 단군 부부의 유해를 대형 관에 넣어 안치해 놓고 있다는 안내원 원경옥씨에게 "남쪽에서는 단군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많다"고 했더니 "과학적인 연대 측정으로 5,011년 전 것이라는 고증이 나왔다"며 "그런 학자들은 학자적 양식도 없는 사람"이라고 반박했다. 단군릉과 동명왕릉 안내자들은 유적들이 김일성 수령의 지시로 '개건(改建)'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개건비는 유적 못지 않게 웅장했다. 유적도 '민족'과 '주체'를 앞세우는 북한 정치 이념의 덕을 보는 것 같았다. <끝>끝>
/평양·개성·묘향산=한기봉기자 kibong@hk.co.kr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사진=최종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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