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더스의 차승재(43·사진) 대표. 충무로에서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는 '좋은 제작자'이다. 10년 전 우노필름으로 출발해 지금까지 그가 만든 작품을 열거해 보면 누구나 이런 평가에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8월의 크리스마스' '처녀들의 저녁식사' '플란다스의 개' '봄날은 간다' '화산고' '로드무비' 등. 어느 하나 '산마이' 라고 욕할 수 없다.그가 '좋은 제작자'인 이유는 단순히 영화의 완성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상업영화 제작자로서 그는 끝없이 장르와 소재 확대를 시도해 왔다. 일상성에 대한 세밀한 묘사('8월의 크리스마스')와 여성의 성에 대한 대담한 토론('처녀들의 저녁식사')은 물론 만화식 무협('화산고')이나 동성애 이야기('로드무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똔똔(본전)만 하겠다"는 희망으로 만든다.
그러나 결과는 그의 뜻대로 돼 주질 않았다. 늘 기대에 못 미쳤고 단 한번도 '대박'이 없었다. 오죽하면 충무로에서조차 "싸이더스만 터지면 한국영화제작사는 다 한번씩 터진 셈"이라고 할까. 흥행이 안되면 아무리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그는 '좋은 제작자'가 아니다.
그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자꾸 좋은 제작자로 꼽아서 나를 묶지 마라. 나도 '가문의 영광' 같은 코미디를 만들 수 있고, 또 이제는 만들어야 산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가 돈만 보고 '완전히 망가지는 코미디'를 만들 것 같진 않다. 촬영을 끝내고 개봉을 준비 중인 '지구를 지켜라'(감독 장준환)와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을 보면. 또 그렇게 한다고 '대박'을 터뜨린다는 보장도 없다. 체질상 망가지는 데도 한계가 있다. 자가 진단처럼 "기껏해야 '인디언 썸머'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작품성과 흥행성 양면에서 성공한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든 명필름 심재명 대표도 부럽지만, '광복절 특사'의 강우석도 '좋은 제작자'로 꼽는다. 장르에 안주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관객의 기호를 정확히 꿰뚫는 혜안이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런 것이 상업영화의 주류가 돼야 한다. 그게 무너지면 한국 영화산업 전체가 무너진다"는 게 차 대표의 생각이다.
'실미도'를 직접 감독까지 하는 강우석과 함께 '태극기 휘날리며'와 '디― 워'의 제작자 겸 감독인 강제규와 심형래도 또 다른 측면에서 좋은 제작자이다. 100억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블록버스터를 만들지만, 한국영화의 미래인 '세계시장'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창동의 영화를 고집하는 이스트필름의 명계남, 임권택 감독의 파트너인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도 좋은 제작자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조폭마누라' '색즉시공' 등 매스컴과 평자들의 뭇매에도 불구하고 흥행 돌풍을 일으킨 '산마이' 군소제작자는 어떤가. 차 대표는 "그들도 존재가치가 있다"고 했다. 야구에서 때로는 텍사스 안타가 주는 재미도 있어야 한다는 것. "기발한 아이디어 없는 저질 코미디라면 왜 할리우드가 그 많은 돈(95만 달러)을 주고 리메이크하려 하겠느냐"고 '조폭마누라'의 속편을 준비 중인 이순열 현진영화사 대표는 되묻는다.
그러고 보면 충무로에는 나름대로 '좋은 제작자'들 뿐이다. '너도 옳고, 또 너도 옳다"는 황희 정승 같은 너그러운 마음에서가 아니다. 각자의 존재양식을 인정하는 것, 예술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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