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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僕가문 명맥잇기 설레요"/15대째 성균관 지키는 정순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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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僕가문 명맥잇기 설레요"/15대째 성균관 지키는 정순일씨

입력
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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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법대 관리직원 정순일(35·사진)씨는 4일 설레는 마음으로 안방 깊숙이 넣어놓았던 제례용 한복을 꺼내 입어보았다.성균관을 경비하고 관리하는 수복(守僕)으로 40여년 근무하다 2년전 타계한 아버지 정경윤씨의 뒤를 이어 5일 성균관 대성전에서 거행될 석전제(釋奠祭)에 처음으로 참석하기 때문이다. 정씨 집안이 성균관을 지키기 시작한 것은 15대조 신국공(信國公)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인조 14년(1637년) 12월 청태종이 한양을 침공했던 병자호란때 성균관 문지기였던 신국공은 공자를 비롯한 5성(聖) 10철(哲)의 위패를 등에 지고 남한산성으로 피란했다가 전란이 끝난 뒤 위패를 무사히 제자리에 모셨다. 인조가 그를 불러들여 소원을 묻자 신국공은 자손대대로 성균관에서 공자님을 모시게 해 달라고 요청, 수복을 맡게 됐다.

수복은 성균관에 기거하며 온갖 궂은 일을 처리하고 석전제와 매월 두번씩 있는 분향을 도맡아 진행하는 직분. 태형 집행권도 있었던 성균관 수복들에 얽힌 일화도 많다. 순조 20년(1820년)에는 성균관에서 가짜 유생들을 몰아내는데 앞장섰고 혈기왕성한 유생들이 조정의 결정에 반발해 괴나리 봇짐을 싸 한양을 떠나려 할 때는 이를 말리는 역할도 맡았다. 또 초시에 합격한 진사들이 지방에서 올라와 성균관 기숙사에서 공부할 때는 그들의 뒷바라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수복을 가업으로 이어 온 경우는 60년대까지만해도 4집안이나 됐지만 이제는 정씨가문이 유일하다.

본적, 출생지 모두 서울 종로구 명륜동 3가53번지 성균관인 정씨는 고교 졸업 뒤 전자회사 등에서 일하다 지난해 9월 가업을 잇기 위해 이 학교 관리직으로 입사했다. 앞으로 5년만 더 근무하면 수복직을 받아 15대에 걸친 '수복가문'의 명맥을 잇게 된다.

정씨는 "아버지는 생전에 큰형이 대기업에 취직한 뒤 가업이 끊길까 걱정했었다"며 "비록 박봉이지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성균관 전통관리에 평생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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