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길 따라<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 구름 밖에 길은 삼십리 그리워서 눈감으면 산수유꽃 섧게 피는 꽃길 칠십리> (곽재구의 '산수유꽃 필 무렵') 꽃이>
매화와 비슷한 시기에 산을 물들이는 봄의 전령은 산수유다. 흰색이 아니라 노란색이다. 3월 초부터 4월 초까지 약 한달간 골짜기에 드리워진 노란 연막을 볼 수 있다. 가장 넓은 산수유 군락지는 전남 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약 3만그루 정도가 자생하고 있다.
산수유꽃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개나리와 맵씨가 비슷하다. 수백그루씩 군락을 이루어 피고, 송이가 작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가지와 꽃 모양이 전혀 다르다. 가지는 개나리처럼 처지지 않았고 꽃은 수십 개의 뿔이 난 왕관을 닮았다. 코앞에 들이대고 보면 화려하기까지 하다.
산수유는 비싼 약재이다. 가을이면 빨간 열매를 맺는데, 특히 신장과 폐가 약한 사람들에게 큰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정력강장제로 인기가 높다. 봄에는 꽃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가을이면 약재로 비싸게 팔려나간다. 효자가 따로 없다.
산수유 열매는 기계로 가공하지 않는다. 산동마을의 여인들이 이로 물어 육질과 씨앗을 발라낸다. 그래서 마을의 여인들은 젊음을 유지하고 사내들은 아내와의 입맞춤으로 그 기운을 받아 정력이 왕성하다고 한다.
산수유 군락지를 찾으려면 물가를 찾아야 한다. 울 안에도, 담장 곁에도 있지만 특히 개울을 따라 밀집해 있다. 산수유 군락지를 만나면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그 노란색 세상에 뛰어든다. 물가에 앉으면 하늘도, 물도 모두 노란빛. 역시 봄의 색깔은 노랑색이라고 믿는다. 모두 가슴 속에 왕관처럼 생긴 산수유 한 송이씩을 담는다.
축제가 없을 리 없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산수유 축제가 21일부터 23일까지 열린다. 조금 늦은 듯 하지만 지난 몇 년간 택일을 잘못해 축제 참가자들은 꽃망울만 보고 돌아가야 했다.
상위마을 입구에는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문 온천이 있다. 지리산 온천이다. 꽃구경에다 온천욕이라. 마음 속에 봄이 활짝 열린다.
벚꽃길 따라
매화와 산수유가 서서히 빛을 잃을 즈음이면 또 다른 세상이 핀다. 벚꽃이다. 벚꽃은 매화를 닮았다. 한꺼번에 피었다가 한꺼번에 진다. 3월 중순부터 꽃망울이 부풀기 시작해 3월말 4월초부터 잎이 열린다. 역시 섬진강 인근에 벚꽃이 와글와글 피는 명소가 많다. 전라도 땅이 아니라 경상도 땅이다.
하동의 쌍계사 '10리 벚꽃길'이 가장 유명하다.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입구에 이르는 4㎞ 구간이다. 꽃이 피지 않더라도 나무만 보는 것 만으로 입이 벌어진다. 꽃이 피면 나무의 실루엣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꽃잎이 세상을 모두 덮는다. 모두 차에서 내려 걷는다. 절로 웃음을 머금는다.
꽃잎이 바람에 날린다. 눈처럼 보이는 날리는 꽃잎은 그러나 볼에 닿아도 차갑지 않다. 오히려 봄의 온기를 지니고 있다. 떨어진 꽃잎이 바닥을 덮는다. 하얀 융단이 발 아래 펼쳐진다. 말 그대로 꽃길이다. 그냥 걷는 것 만으로도 환상적이다. 연인과 함께라면 금상첨화다. 그래서 쌍계사 10리 벚꽃길은 '혼인길'이라고도 불린다.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055)880-2341.
쌍계사 벚꽃길 만큼 아름다운 벚꽃명소가 근처에 있다. '앉으면 그곳이 관광지'라고 불리는 남해도이다. 섬 속으로 난 모든 도로를 따라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 쌍계사의 벚나무보다는 몸피가 작지만 꽃의 기운은 만만치 않다.
꽃 그늘 속을 거닐려면 구(舊) 도로로 접어들면 된다. 남해도를 관통하는 19번 도로를 직선화하면서 구불어진 옛도로가 길 옆으로 나 있다. 차는 다니지 않지만 벚나무는 있다. 한적하게 차를 세우고 꽃길을 거닐 수 있다.
벚꽃길의 원경을 조망하려면 금산에 올라야 한다. 금산은 9부 능선의 기도도량인 보리암으로 유명한 곳. 8부 능선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주말에는 개인 차량은 오를 수 없고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정상이나 상사바위에 오른다. 발 아래로 남해도의 도로가 펼쳐진다. 예외없이 벚꽃의 길 양쪽으로 도열해 있다. 마치 마른 벌판에서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먼지처럼 벚꽃이 2열로 길을 따라 간다.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055)864-3101.
/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가는 길/지리산 남쪽, 섬진강변으로 가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첫번째이다. 진주IC에서 남해고속도로로 바꿔타고 순천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하동IC에서 빠지면 바로 섬진강변이다. 남해의 벚꽃을 구경하려 한다면 진교IC에서 나와 1002번 지방도로를 타면 바로 남해대교에 닿는다. 진교IC에서 남해대교에 이르는 길 옆으로도 벚꽃이 장난이 아니다.
옛 방법은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 전주IC로 빠져 전주역전으로 이어져 있는 26번 국도를 탔다가 17번 국도로 갈아탄다. 남원을 거쳐 19번 국도로 달리면 구례와 하동으로 이어진다. 고속도로의 단조로움이 싫다면 이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화엄사, 쌍계사, 보리암 등 인근의 명소를 반드시 들르도록.
머물 곳/대규모 숙박단지는 없다. 그러나 숙박시설은 많다. 구례는 화엄사 인근에 쉴 곳이 많다. 한화리조트 직영점인 지리산프라자관광호텔(061)782-2171을 비롯해, 지리산스위스관광호텔(783-0700) 등이 대표적이다. 산수유마을에는 지리산온천관광호텔(783-2900)이 있고 인근에 온천욕이 가능한 장급 여관이 많다. 화개장터와 쌍계사 인근에도 숙박시설이 밀집해 있다. 화개파크(055-884-1811), 수운각(883-6241), 성운각(883-6302) 등이 비교적 객실수가 많은 여관이다.
먹거리/섬진강에 갔다면 우선 먹어야 할 것이 재첩국. 재첩은 바다와 가까운 강의 모래속에 사는 작은 조개이다. 특히 섬진강의 재첩을 알아준다. 재첩국은 해장용으로도 좋지만 한끼 식사로도 훌륭하다. 섬진강변을 따라 구례에서 하동까지 재첩국집이 계속 이어져 있다. 하동의 강변원할매재첩국(055-882-1369) 등이 유명하다.
참게 요리도 빼놓을 수 없다. 비싸지만 모처럼 나들이에서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 바닷물과 민물의 향기를 모두 담은 묘한 맛을 낸다. 하동 화개장터 농협앞의 개화식당(883-2061)이 잘 하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백운산 기슭의 매화가든(061-762-6071)은 흑염소 숯불 모듬구이와 고로쇠약수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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