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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名水](1) 태백산 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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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名水](1) 태백산 용정

입력
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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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생명과 문명의 모태이다. 좋은 물은 인간은 물론, 모든 산 것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가공수만을 마셔온 도시인들은 진정한 물의 맛과 기운을 모른다. 이땅 곳곳에는 우리 삶의 맥을 뛰게 했던 명수(名水)들이 있다. 생명력 넘치는 물을 찾아 간다. /편집자주

태백산(1,567m·강원 태백시)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의미가 남다른 산이다. 민족의 시조 단군의 산이다. 산 아래에는 단군이 좌정하고 있는 단군성전이 있고, 산 위에는 예로부터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다. 고개를 숙여야 하는 '아버지의 산'이다.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의미도 있다. 태백산 자락에서 두 개의 큰 물줄기가 시작된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낙동강이 시작되는 황지라는 샘이 있다. 민족 원류가 비롯된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옛날 조상들이 민족의 시조를 이 곳에 모시려 했을 때, 과연 이런 사실을 알았을까. 신비롭다.

이런 의미를 가진 태백산에는 또 하나의 샘이 있다. 꼭대기 천제단 바로 아래이다. 해발 1,470m의 높이이다. 남한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연 샘물이다. 이름이 '용정(龍井)'이다. 산꼭대기에서 만나는 용.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 용의 전설은 바다가 주무대이다. 아니면 산골짜기의 맑은 폭포나 소(沼)이다. 그런데 왜 산 위에 용이 올라왔을까.

용정의 물은 동해바닷물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하늘과 바다 용왕이 교통하는 성스러운 물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용정 옆에 용왕각이 들어서 있다. 산꼭대기에서 용왕에게 제를 올린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용왕님의 별장이다. 해마다 10월 3일 개천절에는 용왕과 단군이 만난다. 천제를 지내는 사람들이 용정의 물을 제수로 쓰기 때문이다.

용정의 물은 섞여있는 것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물이다. 차고 맑다. 가뭄이나 홍수에도 수량이 변하지 않는다. 땀 흘린 산꾼이나, 천제단을 찾는 수행자들에게 정신이 확 드는 감동을 준다. 용정수는 찔끔찔끔 마시기보다는 단숨에 들이켜는 게 좋다. 그래야 식도를 타고 내려가 배를 가득 채우는 태백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물 한잔 마시고 돌아보는 용정의 주변이 예사롭지 않다. 1,400m 이상의 고지에서 만나는 종교와 역사의 향기이다. 용정은 고찰 망경사의 앞마당에 있다.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망경사는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다. 가람의 틀은 그리 크지 않지만 추상 같은 위엄이 있다. 옆으로 단종비각이 있다.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군왕, 단종을 기리는 사당이다. 단군과 용왕은 왜 그를 품고 있는 것일까. 시원하게 넘어갔던 용정수가 뱃속에서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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