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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3>이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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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3>이기명

입력
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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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영원한 회장님이지." 15년동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李基明·67)씨는 "내가 무슨 자리라도 차지하면 이기명의 지난 세월이 다 날아가버린다"고 손사래를 쳤다.그는 노 대통령의 다른 측근들과 상황이 좀 다르다. 청와대에 입성하지도 않았고 정계 진출을 노리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것을 얻기는 커녕 운명처럼 달고있던 후원회장 직함마저 대통령 취임과 함께 사라졌다. "대통령 후원회는 듣도 본 적도 없기 때문"이란다.

내년 총선에의 출마 의향을 떠봤다. 정치적 야심이 없다면 중용 못된 아쉬움도 없을까. 노 대통령과 그를 진(晉) 문공(文公)과 개자추(介子推)에 비유하며 심사도 긁어봤다. 그는 "모두 궁금해 하는데 이제(이 나이에) 뭘 하는 것이 어울리겠나"라며 "능력이 없어. 조언이나 하는 수준이지"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대통령은 '언제든 하실 말씀 있으면 해달라'고 하지만 그 바쁜 얼굴 보면 뭐해"라며 "정든 자식 같은 녀석들을 만나서 시중에 도는 이야기나 전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벌써 청와대에 여러 차례 갔지만 대통령은 일부러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저 사라져 가는 노병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특히 문화예술쪽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뜻을 비쳤다. 그쪽에 지인(知人)이 많은 만큼 외곽에서 '순수문화의 꽃을 피운 대통령'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는 "대통령이 문화쪽 조언을 해달라는 각별한 부탁을 했다"고 했지만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문화관광부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1989년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후 줄곧 후원회장으로 안살림을 맡았다. '방랑시인 김삿갓' 등으로 잘 나가던 방송작가였던 그에게 원고청탁이 뚝 끊어졌다. "후회는 없어. 사랑하면 곰보 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고 하지않나." 그리고는 1956년 대학 1학년 때 해공 신익희(申翼熙) 선생 서거날 경무대 앞에 가서 시위를 벌이다 구속됐던 경험을 소개하며 "나도 운동권이거든"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는 노 대통령과의 '옛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 "비주류중 비주류라 언론과 주류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대통령이 속으로 분노를 삭이다 '저 외롭습니다'고 하면…." 그는 취임식 날 썼다는 '힘 없는 자들의 영원한 벗이여'라는 축시를 품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노 대통령의 성공을 확신한다. 인터넷을 이용하니 언로가 막힐 염려도 없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 옆에 있는 젊은 아이들이 나라 생각에 늘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며 믿으라고 한다. "대통령의 삶은 매 시기 옳지 않은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라며 고(故) 서정주(徐廷柱) 시인의 시구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를 읊조리며 개혁 저항 우려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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