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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의 그림에 담긴 국악]<1>김홍도의 '선인야적'(仙人夜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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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의 그림에 담긴 국악]<1>김홍도의 '선인야적'(仙人夜笛)

입력
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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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 숙명여대 교수가 격주로 '그림에 담긴 국악'을 연재합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김홍도의 풍속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생활을 담은 그림을 통해 음악과 춤으로 하늘에 제사하고, 함께 즐긴 우리 옛모습과 즐거운 음악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이끕니다.

그림 속의 봄은 무르익어 가고 있다. 맨발로 바위 위에 앉아 관악기를 부는 사람의 옷차림은 가뿐하고, 나뭇가지 끝은 연 푸른 빛깔로 물들어 있다. 그림 속의 봄기운이 피리 소리를 타고 바깥으로 퍼져 나오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피리 부는 사람의 여유와 평온도 어느새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신선이 밤에 관악기를 분다'는 뜻의 이 그림에서 주인공은 아주 편안 자세로 바위 위에서 관악기를 불고 있고, 앞으로는 푸른 잎이 돋기 시작한 나무, 뒤로는 영지버섯이 담긴 망태기가 보인다. '밤 깊어 학은 날아가고 가을 하늘처럼 고요한데 산 아래 벽도화는 봄을 반쯤 피웠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그림과 글 모두 조용한 봄밤의 이미지를 듬뿍 담고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 그림 속의 젊은 남자는 한상자이다. 한상자는 중국 당나라 때의 유명한 학자인 한퇴지(韓退之·본명 한유·韓愈 768∼824)의 조카로 신선 공부를 열심히 해 신선이 되었다. 그는 언제나 관악기를 불고 다녔고, 특히 복숭아 꽃을 빨리 피워 열매를 맺게 하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한상자의 모습을 그리는 순간 머리 속으로 아름다운 영상이 빠르게 스친다. 바위에 앉은 신선 한상자가 신비로운 가락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복숭아밭은 어느새 분홍색 꽃바다가 되고, 곧 이어 떨어지는 꽃잎들이 봄바람에 흩날리고, 그 자리에 탐스런 복숭아가 열린다.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이 신선이 부는 악기야 말로 마술피리겠네…'라는 어린아이 같은 상상이 꼬리를 문다.

이 신선이 부는 악기의 정체도 궁금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관악기를 '피리' 라고 통칭하는 데 따르면 간단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악기냐를 따지자면 대답이 쉽지 않다. 국악기에는 피리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관악기가 있는 데다 그림 속의 악기는 향피리나 당피리, 세피리 등의 국악기와는 다르다.

악기 모양은 단소처럼 보이지만 현재까지 단소의 역사가 뚜렷이 밝혀지지 않은 터라 자신 있게 단소라고 하기도 어렵다. 꼼꼼히 살펴보면 악기를 연주하는 손의 자세가 어딘지 어색하다. 보통 단소를 불 때는 왼손이 입술 가까이에, 오른손이 그 아래쪽에 놓이는데 이 그림에서는 위치가 바뀌었고 바람직한 연주 자세와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김홍도가 한상자의 고사를 사실적으로 재현했다거나, 화가의 동시대 음악 상식이 그림에 반영됐을 것이란 관점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면 생각할 점이 많다.

다만 언제나 악기를 갖고 다니며 유유자적을 즐긴 한상자의 '신선 놀음'과 그가 그림 속에서 연주했을 신비한 가락, 그리고 생명이 움트는 봄밤의 이미지를 한상자의 연주를 통해 표현한 화가 김홍도의 '음악 생각'이 주는 상상이 한없이 즐거울 뿐이다.

송 혜 진 숙명여대 전통문화 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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