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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서의 이창동의 문학세계 /분단상처 맞서기… 이념적 절망묘사… 그리고…다음"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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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서의 이창동의 문학세계 /분단상처 맞서기… 이념적 절망묘사… 그리고…다음"役"은…

입력
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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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가 기획한 '문학기행'을 떠났을 때 이창동(49·사진)씨는 "영화판에서 오래 버텨내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고 했다. 자본과 대중의 비위를 맞추어 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영화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을 세상에 내놓은 뒤였다. 그는 지난해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5개 부문을 휩쓸었고 지난달 문화관광부 장관에 취임했다.

2년 전 떠난 '문학기행'은 그가 소설가였을 때의 발걸음을 되짚는 길이었다. 그는 1983년 등단한 뒤 10년 동안 소설을 쓰면서, 창작집 '소지(燒地)'와 '녹천에는 똥이 많다'(문학과지성사 발행)를 펴냈다. 장편 3편을 연재했지만 '미달'이라는 생각에 책을 내지 않았다. 그만큼 엄격했다. 단 두 권의 소설집은 그러나 그에게 '괴물'(평론가 정과리)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1992년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중편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이창동 소설의 정점이다. 서울 녹천의 23평 아파트는 냄새 나는 똥무더기와 어울려 지어진 것이었다. 매일 아침 그 집에서 나와 밤마다 그 집으로 들어가면서도 준식은 주인이 될 수 없었다. 그는 평범하지도 못한, 평범한 삶에 닿기 위해 허위와 굴욕을 감당해 온 사람이었다. 이복동생 민우의 갑작스런 출현이 소시민의 허상을 벗기려는 위협이 된다. 수배 중인 운동권 동생을 경찰에 고발한 뒤 돌아오는 길에 준식은 녹천의 똥무더기 위에 앉아 흐느껴 운다.

90년대 초반 이데올로기가 자본·기술과 자리를 맞바꾸던 때 그는 절망을 보았다. 일상은 똥칠을 하고 비척비척 걸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는 현실이었다. 현실은 학생운동에 회의를 가진 채 등록금을 벌기 위해 광산촌 다방에 취직했다가 광산촌에 잠입한 운동가로 몰리는 여학생 신혜('하늘등'), 남로당원이라는 이유로 복역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 간첩사건이 발표되자 간첩 죄를 자청하는 노인 김학규('용천뱅이')에 있었다. "오늘은 이상적 전망이 제거된 고독한 현실주의만이 남았을 뿐이다. 나는 그 현실주의, 전망도 없고 힘도 없고 보람도 없는 일상의 쓸쓸함을 그리려 했다."(한국일보문학상 수상소감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 '소지'에서 그는 분단 문제에 천착했다. 좌익활동을 하다가 생사불명이 된 부친이 앞길의 그늘이 된 아들들과 어머니의 가슴앓이를 그린 단편 '소지'를 비롯, '끈'과 '친기(親忌)' 등 첫 창작집의 작품은 대부분 '빨갱이' 아버지를 둔 2세의 이야기였다. 그것은 해방공간에서 남로당 간부를 지낸 아버지에게서 나온 이야기이기도 했다. 가족에게 깊이 새겨진 분단의 상처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으로부터 그의 글쓰기는 시작됐다. 절판된 소설집 '소지'는 문학과지성사가 복간할 예정이다.

한편으로 "사물의 반응이나 언어에 무디어지는 게 두려워 삶을 흔들어 놓고 싶다는 생각에", 다른 한편으로는 "글쓰기와 달리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 좋아 보여" 영화로 옮겨갔던 그였다. 문화부 장관 자리도 영상에 무디어지지 않기 위해 다시 한 번 삶을 흔들어 놓으려는 선택일까. 언젠가 "다시 소설을 쓸 것"이라는 그가 어떤 일상을 통찰하고 증언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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