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북한핵 문제로 힘든 출발을 하고 있다. 물론 지난 정권들도 취임을 전후로 터진 안보 문제나 경제 문제로 허니문도 즐기지 못한 채 골칫거리를 안고 출발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가 맞이한 대북 문제는 과거 정권과는 다른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두 가지 과제가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과거와의 연속과 단절의 관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그 하나는 지난 5년간 햇볕정책 성공의 패러독스다. 그것은 북한 문제를 보는 시각의 다양화로, 햇볕정책 추진에 따라 북한과의 다양한 접촉이 이루어지면서 일관성 있는 대북 인식이 사라지고 각자의 이익이나 관심에 따라 북한을 보는 다양한 그룹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이런 대북 인식의 다양화는 햇볕정책의 새로운 구심점 설정에 장애 요인이 될 것이다. 지난 정부가 국내적으로 미칠 영향을 사전에 충분히 고려치 않은 채 햇볕정책을 진행시킨 결과 나타난 이 문제는 앞으로는 대북문제에 있어서도 국내적 연계를 고려하면서 햇볕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이 경제 및 비정치적 분야와 군사· 안보 영역간에 엄청난 격차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즉, 햇볕정책의 추진으로 관광 철도연결 이산가족 상봉 등 비정치적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가 단기적으로 일어나면서 대북 관계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데 반해 군사· 안보 관계의 변화는 정반대로 제자리 걸음이었다. 확대된 경제-안보 간의 격차는 급기야 국내에 '퍼주기 논쟁'을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은 북한의 대남 접근에 대한 기본 전략을 철저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북한은 일관성 있게 군사· 안보 문제를 미국과의 관계로 설정해왔다. 이런 북한의 전략은 남한의 대북 쇄도 전략에 쐐기를 박음과 동시에 가능한 한 남한과의 경제관계를 이용하려는 철저히 계산된 전략 구상의 결과였다.
북한은 안보 문제를 남한과의 안건에서 제외함으로써 언제든지 안보 문제를 활용해 남한과의 관계에서 수위조절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려 했다. 미국과의 관계는 북한에게 단순한 안보 문제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북한은 그들의 최대 경계 대상이 남한이었으므로, 남한의 대북 영향을 최대한으로 막으면서 실익은 최대화하려 했다. 김대중 정권의 이상주의적 햇볕정책은 북한 전략의 한 면만을 보았던지, 아니면 다른 면을 알면서도 너무 성급한 기대를 한 결과 절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항상 기대와 성과간의 격차에 시달려야 했다.
이제 새 정권은 과거의 이상주의적 햇볕정책에서 벗어나 현실주의적 햇볕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실주의적 햇볕정책이 갖는 연속적 측면은 북한과의 지속적 접촉과 대화라는 대원칙 하에서 북한의 체제 개방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현실적 햇볕정책은 과거와의 차별성 측면에서 막연한 낙관론이나 이에 근거한 안보 문제와 경제관계의 혼돈에서 벗어나 안보를 고려한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안보문제를 대남한 관계의 수위조절로 활용하는 북한의 전략에 적절이 대응해야 하며, 국내적으로도 대북관계의 완화와 안보문제의 엄연한 현실이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혼동되지 않아야 한다. 현실적 햇볕정책은 경제가 안보문제를 해결한다는 이상론적인 독일 동방정책의 재판(再版)이 아니라, 이러한 한국적 상황을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