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에 앉아 전조등을 켜니, 계기판이 온통 초록빛으로 반짝인다. 순간 야간비행을 위해 이륙을 앞둔 조종사가 된 착각에 빠진다.특히 앞 유리창 중간 밑부분에 달려있는 사브카컴퓨터(SCC) 계기판은 주변온도, 연료소모율, 목적지 예상 도착시간 등을 알려줘 비행기란 느낌을 더해준다. 요즘 유행하는 우드그레인이나 메탈그레인 없이 깔끔한 블랙 톤으로 정돈된 각종 스위치들은 이 차가 겉 멋보다는 달리기에 충실한 차로 설계됐다는 느낌을 준다.
속력을 느끼기 위해 차량 소통이 적은 자정까지 기다리다 나선 자유로. 시속 140㎞로 요리조리 추월하며 달리다 곧게 뻗은 길을 만나게 돼, 다시 한번 가속기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기분 좋은 터보 가동소음이 들리며 즉시 몸이 뒤로 제쳐진다. 조용하던 차가 시속 160㎞부터 공기의 저항음을 들려준다. 시속 200㎞에 도달하고 나서 약간 겁이 나 가속기 패달을 놓는다. 사브 뉴9-3이 지향하는 '프리미엄 컴펙트 스포츠세단'이라는 구호가 무엇인가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코너링에서도 사브의 강점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안쪽으로 방향을 틀 때 빈틈없이 전해지는 날카로운 맛이 자꾸 커브길 추월을 유혹한다. 대신 서스펜션은 딱딱한 편이어서 노면의 충격이 그대로 전해진다. 사브가 스피드를 즐기는 마니아들로부터 호평을 듣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러나 뉴9-3은 외모에서 사브 골수팬들을 섭섭하게 한 모델이다. 사브의 트레이드 마크인 해치백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정통 4도어 세단으로 탈바꿈한 것. 사브 고유의 스타일 중 남아있는 것은 낮은 본네트와 쐐기형 차체 그리고 얇지만 날카로운 느낌의 전조등 정도다. 사브가 GM에 둥지를 튼 이후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스타일 변화인데, 골수 팬의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대중성을 확보해 BMW3시리즈의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편의장치도 이전 모델에 비해 대폭 강화했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분리한 듀얼 에어컨, 세계 최초의 목탄식 공기정화 필터, 7스피커 스테레오 시스템, 레인센서 와이퍼 등을 갖췄다. 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려 레인센서를 작동해 봤지만 차라리 수동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 외 편의장치들은 옛 사브900 모델보다 훨씬 세련돼졌다.
2,000㎤DOHC터보라는 강력한 엔진을 기본으로 삼으면서도, 전통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대중에게 한발 다가선 사브 뉴9-3의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궁금해진다.
리니어 3,980만원, 아크 4,990만원, 컨버터블 5,780만원 3가지 모델이 한국에 출시됐다.
/정영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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