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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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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병아리 기자 시절, 음악 분야를 몇 년 취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처음 임무를 맡았을 때에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1년쯤 지나자 하는 일이 심드렁해졌고, 그러다보니 정말 '억지로' 일을 했습니다. 이후 영화를 담당했습니다. 역시 처음에는 신이 났지만 그 세월이 길지는 않았습니다.음악과 영화는 있는 그대로 즐겨야 맛이 납니다. 그러나 듣고 보는 것이 직업이 되었을 때에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작품을 뜯어보고, 분석하고, 그 속에서 허점을 찾아 비판해야 합니다. 취향에 맞지 않은 음악도, 졸리기만 한 영화도 어쩔 수 없이 듣고 봐야 합니다. 즐거울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옛 노래만 듣고, 떠들썩한 개봉 화제작에도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지금은 여행을 취재합니다. 여행은 어떠냐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자연과 벗하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명승과 절경을 두루 구경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니 역시 마음이 굳어지더군요.

다른 여행객들이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경치가 빼어난 곳에서도 감동이 없습니다. 어떤 각도로 사진을 찍어야 물빛이 제대로 나올까, 태양광이 역광이 디려면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나, 비가 오면 취재가 꽝이 될텐데... 오히려 짜증나고 착잡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봄꽃입니다. 봄꽃은 기자에게도 언제나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후아~' 꽃동네에 서면 나지막이 탄성도 질러 봅니다. 왜 봄꽃일까요?

마음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꽃과 함께 시작될 신록의 합창. 더욱 크게 노래를 부를 계곡물과 새들, 비어있는 논밭에서 솟아오를 푸른 싹... 앞으로의 희망이 꽃속에 함께 있습니다.

봄이면 섬진강으로 세번 이상 달려갑니다. 꽃에 따라 활짝 피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그럴 예정입니다. 언 땅을 헤집고 나무 위로 올라온 자연의 기운을 보며 무뎌졌던 가슴을 마구 흔들어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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