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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의 하얀 아우성 봄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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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의 하얀 아우성 봄을 깨우다

입력
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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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아니다. 불길이다. 봄을 알리는 꽃, 매화는 피지 않는다. 타오른다. 과거에는 사군자(四君子)였다. 눈 속에서도 맑은 꽃잎을 여는 강인함을 높이 샀다. 담장 옆에서, 마당 한쪽에서 다소곳하게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는 분명 그런 기품이 있었다.그런데 요즘의 되바라진 매화는 더 이상 군자가 아니다. 무리 지어 한꺼번에 아우성을 친다. 압구정동 혹은 청담동 날라리보다도 화려하다. 현기증이 인다. 이제 그 눈부신 개화가 시작됐다.

육지에서 가장 먼저 매화를 볼 수 있는 곳은 지리산 남쪽, 섬진강변이다. 바다를 타고 올라온 봄은 지리산의 높은 봉우리에 막혀 한동안 숨을 고른다. 그리고 가지고 온 온기를 풀어놓는다. 그래서 섬진강변에서는 매화 뿐 아니라 산수유, 벚꽃 등 봄꽃을 일찍 볼 수 있다.

강변에서 매화 무리를 볼 수 있는 곳은 크게 두 곳. 강북과 강남에 각각 한 곳씩이다. 먼저 강북쪽. 길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약간의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전남 구례를 떠나 19번 국도를 타고 경남 하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토지면 송정리가 나온다.

길 왼편 언덕에 토지초등학교가 있다. 학교 옆으로 산에 오르는 시멘트 포장길이 나있다. 한참 오르면 소박한 마을이 나온다. 마을 앞 언덕은 온통 매화나무로 뒤덮혀있다. 구름이 드리워진 것 같다. 송정리의 매화는 서막에 불과하다. 강남에 어마어마한 매화마을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남 광양시 다압면. 지리산을 마주보고 있는 백운산 자락의 매화마을이다. 가난을 면하기 위해 매화나무를 심었다. 1920년대부터이니 80년이나 됐다. 연간 생산하는 매실이 150톤에 이른다. 나라에서 인정하는 매실장인인 홍쌍리씨의 청매실농원(061-772-4066)이 가장 유명하다.

이제 농장이라기 보다는 멋진 공원이 됐다. 매실을 담가 숙성시키는 굵은 항아리가 보기좋게 도열해 있고, 매화나무 사이사이로 산책길을 냈다. 매실차와 짠지 등을 맛볼 수 있는 분위기 좋은 사랑방도 있다.

매화를 가장 잘 보려면 장독대 아랫길을 지나 언덕에 올라야 한다. 언덕 아래로 깊은 골짜기가 있고 골짜기 양쪽에 매화나무가 빼곡이 심어져 있다. 만개하면 이쪽 능선의 사람은 꽃에 가려 보이지 않고 저쪽 능선의 사람만 눈에 띈다. 사진작가와 화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을 중심으로 매년 매화축제가 열린다. 올해에는 지난 1일 시작해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매화축제는 단순한 꽃축제가 아니다. 사진촬영 대회, 작은 음악회, 사생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관광객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길거리화가들도 모인다. 아기자기하고 따스하다.

물론 꽃이 만개하는 휴일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농원의 매화는 이제 봉우리를 열기 시작했다. 이번 주말이면 약 50%, 중순이면 만개할 예정이다.

매화의 분위기를 더욱 띄워주는 것이 있다. 섬진강이다. 봄기운을 머금은 섬진강의 물빛은 진한 초록색이다. 남도의 골짜기에서 쓸려 내려온 하얀 모래가 강변을 덮고 있고 물은 그 모래밭 위에 아무렇게나 길을 내고 흐른다. 대나무가 강 언덕을 뒤덮고 있다.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는 이제 더욱 푸르러진다.

산과 강에서 연출되는 초록색과 흰색의 변주. 봄볕을 맞으며 바라보는 기분은 나른하다. 봄은 그렇게 나른한 기운으로 시작된다.

/광양=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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