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있는 돈(원화)을 엔화로 바꿔 예금하면 이자소득세를 훨씬 적게 내고, 종합금융소득세 부과대상에서도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환거래이익, 이자소득세 감소 등을 감안하면 '엔화스왑예금'이 원화예금보다 이율도 높고, 과세망도 피해갈 수 있으니 일석이조입니다."거액의 재산가로 알려진 A씨는 최근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 직원으로부터 이 같은 전화를 받았다. 예금금리가 계속 떨어지면서 고객들이 0.1%포인트의 금리차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운데 외환, 신한, 기업 등 몇몇 은행들은 작년 말부터 '큰손' 유치를 위해 이처럼 절세가 가능한 엔화스왑예금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이 상품은 거액 금융자산가들 사이에 종합금융소득세 등 과세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은행들은 이 상품을 드러내놓고 팔 경우 '도덕적 해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까봐 대부분 1대1 고객접촉을 통해 암암리에 예금을 유치하고 있다.
거래절차
은행들이 고객으로부터 원화를 받아 엔화로 바꿔준 뒤 이 자금을 엔화 정기예금으로 예치하고, 만기일에 원리금을 엔화로 지급한 뒤 다시 원화로 환전해주는 것이다. 3일 현재 외환은행의 3개월 만기 상품을 기준으로 볼 때 원화 정기예금 금리는 연 4.1%, 엔화 예금은 연 0.049%로 금리차가 크다. 언뜻 보면 엔화 예금이 훨씬 불리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은행이 예금을 받을 때 원·엔화 예금 금리차를 감안, 만기시 지급할 프리미엄(선물환 마진)을 미리 정하고, 만기가 되면 이 프리미엄에 따라 원리금을 지급해주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3개월짜리 상품의 경우 선물환 마진 등을 포함한 엔화스왑예금의 실질 이자가 원화예금 금리보다 0.4∼0.8%포인트 정도 높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과세 회피 수단 악용
엔화스왑예금을 이용하면 고객은 엔화 예금 이자에 대한 소득세(16.5%)만 내는데, 원화 예금과 달리 엔화 예금 금리는 매우 낮아 이자소득세 부담액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선물환마진은 소득세법상 이자소득이 아닌 환거래이익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과세대상에서 제외된다. 연간 이자소득이 4,000만원 이상에 달해 종합금융소득세를 내야 하는 거액 금융자산가들은 이 상품을 이용하면 세법상의 이자소득이 크게 줄어들어 과세망을 비껴갈 수 있게 된다.
5억원 이상 거액 예금자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이 상품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외환은행의 엔화예금은 작년말 30억∼40억엔 수준에서 올 2월말 현재 120억원엔대로 크게 늘어났다.
은행 모럴해저드 논란
고객 입장에선 절세효과와 높은 이율을 얻을 수 있고, 은행 입장에선 예금실적이 높아지고 환전 수수료 등 부수입을 올릴 수 있어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그러나 은행들이 과세체계의 허점을 이용, 이 같은 상품판매에 나서는 것은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어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모은행 관계자는 "이자나 다름없는 선물환마진에 대해 비과세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일부 지적이 있어 적극적으로 판매하지는 못하고 있다"며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 봐 정부에 (상품판매의 타당성에 대한) 문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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