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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는 빛 포근히 감싸죠"/한지작가 함 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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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는 빛 포근히 감싸죠"/한지작가 함 섭씨

입력
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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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은 '형상'이 아니라 '바탕'으로 변별돼야 합니다. 유화는 빛을 내뿜지만 한지화는 빛을 포근하게 머금지요." 한지 작가 함섭(61)씨의 작업실. '바탕'을 강조하는 그의 기가 느껴진다. 제작 중인 작품들과 그가 특별 주문해 사용하는 갖가지 빛깔의 닥종이 뭉치가 어지럽게 쌓여 있는 한가운데 작업대가 놓여있다. 반복된 풀칠로 말라붙은 풀이 작업대 밑으로 마치 고드름처럼 늘어져 딱딱하게 굳어있다. 한쪽에는 닳고 닳은 플라스틱 솔이 수십 개 쌓여 있다. 시멘트나 타일 바닥을 청소하는 거친 솔이다.그의 평면 작업은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닥종이 10겹 이상을 풀로 바탕에 붙인다. "찹쌀풀이나 밀가루풀 등 식물성 풀을 써야 종이가 숨을 쉰다." 그 다음은 온전히 육체노동에 가깝다. 함씨는 바탕을 솔로 두드린다. 100호 크기 작품의 경우 1만번 정도는 두드려야 제대로 완성된다. 그 위에 오방색을 위주로 치자, 황백 등 천연 안료로 물들인 닥종이를 찢어 붙이고, 짓이기고, 몇 m 떨어져 힘껏 던져 붙이기도 한다. 추상회화처럼 보이는 화면 구성은 밑그림 없이 이런 작업 도중 순간적 영감에 따라 변화해서 다시 종이를 찢어내기도 하고 덧붙이기도 한다. 완성된 작품은 멀리서 보거나 사진으로 보면 밋밋하지만 실제 가까이서 보면 조각에 가까울 정도로 입체적이다.

함씨는 1980년대 초부터 이런 한지 작업의 세계를 개척했다. "한계에 다다랐다. 단순한 평면 회화는 내가 아무리 시도해 봐도 이미 다른 곳에 있는 다른 작가와 유사한 페인팅밖에 만들어낼 수 없었다. 독창적이고 싶었다. 우리 전통 닥종이야말로 명백한 나의 선택이 됐다."

닥종이를 현대적 조형언어와 결합한 그의 작품은 한국적 정서를 세계 화단에 알렸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 국제 아트페어에서 100호 이상의 대작들이 잇달아 매진됐고 독일, 네덜란드, 홍콩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단지 이런 미술시장 공급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스스로 좋아하는 표현대로 "시골 우마차 같은 뚝심과 우직함으로" 1년에 100점 이상의 작업을 해낸다. "내 그림의 자유로운 선과 색면은 한국인의 가슴 속에 있는 푸근한 대지와 고향의 기운이고, 각 방위의 수호색인 오방색은 보는 사람에게 생명의 기운을 전한다"고 그는 말한다.

박영덕화랑 초대로 6∼15일 열리는 개인전에서 '한낮의 꿈(Day Dream)'이라 이름한 그의 근작을 볼 수 있다. (02)544―8481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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