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조각을 보고 있으면 이게 내 모습이고, 한국 사람이 사는 모습이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종종 가슴 한복판이 뻥 뚫려버린 사내, 서구적 8등신이 아니라 한국인의 일반 체형인 6.5등신의 보통 여자의 모습은 바로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이다. 조각가 김광진(金光振·1946∼2001). 치열한 현실 의식에 바탕한 독자적 한국적 구상조각의 세계를 55년의 짧은 생애에 미처 다 펼치지 못했던 그의 유작전이 2주기를 맞아 5∼11일 인사갤러리(02―735―2655)에서 열린다.
홍익대 조소과 65학번인 그는 한국적 인물상의 창시자로 불리는 권진규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의 조형 정신을 정립했다.
교사 생활을 하며 김영중의 조수로 있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에 전념, 중앙미술대전 장려상과 동아미술상을 받으면서 구상 분야의 눈길 끄는 작가가 됐다. 85년, 90년, 99년 세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역사의 그늘에서 또는 내부적 생명의 미몽에서 짓눌리고 비틀거리는 나와 이웃들의 구체적 삶의 모습을 애정어린 눈길로 관찰해 우리의 갖힘을 진실되게 드러내고자 하는 데 있다"고 스스로의 작업관을 피력했다.
그는 수미일관 흙을 빚어 만드는 전통적 소조를 바탕으로 삼았다. 브론즈나 폴리코트 작품도 모두 소조를 거쳐 떠냈다.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은 모습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걷고 있거나, 벽 혹은 기둥을 붙들어 안고 절규하는 듯한 모습의 소시민, 가슴이 직사각형으로 뚫린 채 그 안에 구름의 형상을 담고 있는 남자, 얼굴은 지워진 채 상복을 입고 있는 만삭의 여인.
구차한 설명이 필요없는 그의 구상조각은 1980년대라는 주된 시대적 배경을 빼고 보아도 일상과 현실에 번민하지만,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꿈을 언제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죽음에서 새 생명이 탄생한다는 생의 비의까지 담으려는 작업이다. 절망과 희망, 절규와 꿈이 한 작품에 스며있다.
"김광진은 현재와 같은 한국의 미술 풍토에서 점점 더 나오기 어려워진 조각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혼탁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늘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는 삶과 죽음을 생각했고 생명, 자유, 진리와 같은 비가시적 세계를 가시화하기 위해 작품을 했다. 그는 인습의 틀에 갇힌 우리 구상조각과 '현대조각의 현란한 잔치' 양쪽과 거리를 두고 현실과 역사 속에서 존재의 본질적 의문에 다가갔다."
평론가 김윤수의 말처럼 그의 유작은 시대의 현란한 유행을 역행한 예술가가 오히려 시대를 앞서가고 오래 살아 남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교 동창과 대학 동기들, 오래 재직했던 진주교대 동료 교수들과 제자 등이 유작전을 준비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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