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11시 서울대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03년 서울대 입학식장. 신입생과 학부모 1만여명으로 가득찬 식장 분위기는 잔뜩 들떠 있었다. 대학생활의 꿈에 부푼 신입생들이나 자랑스러운 아들딸을 둔 부모들 모두 상기된 표정이었다.그러나 2층 학부모석 맨 앞줄에 영정을 감싸안은 채 처연히 앉아있는 한 40대 어머니의 모습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이번 대구 지하철 참사로 실종된 이현진(19)양의 어머니 이숙자(45)씨는 "네가 살아 있었다면 저 자리에서 방긋이 웃고 있었을텐데…"라고 되뇌며 딸의 사진을 연신 쓰다듬었다.
시종 얼굴이 굳어 있던 이씨는 마지막 순서로 교가제창이 시작되자 마침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이씨는 "딸의 영정이나마 입학식 구경을 시켜주고 싶었다"며 현진양의 큰아버지 이인식(49)씨와 현진양의 대구외국어고 3학년시절 담임교사 김돈호(33)씨의 부축을 받으면서 식장을 빠져나갔다.
고교시절 늘 우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총학생회 총무부장을 할 정도로 팔방미인이었던 현진양의 꿈은 외교관. 현진양은 선망하던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합격하자 마치 절반의 꿈을 이룬 양 기뻐했다. 그러나 평소 관심이 많던 재즈를 배우기 위해 지난달 18일 집을 나선 게 현진양의 마지막 길이 되고 말았다. 큰아버지 이인식씨는 "총명하기도 했지만 활달한 성격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은 아이였다"고 안타까워 했다.
대구시청 총무과 직원인 아버지 이달식(45)씨는 실종자 접수 업무에 종사하느라 입학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최근 "차점자에게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었던 이씨는 "슬픔에 잠겨있을 200여명의 실종자 가족 및 유가족들을 생각해 어머니만 조용히 식에 참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입학식 직전 총장실에서 이양 가족을 별도로 위로했던 정운찬(鄭雲燦) 총장은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 추도를 위해 오후에 예정됐던 신입생 환영행사를 취소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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