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몸살이 난 것 같았다. 한국인은 그럴 때 꼭 사우나에 간다는 한국 친구의 충고를 따라 공중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에 가본 적은 있었지만 혼자는 처음이었다. 전에는 항상 친구와 같이 가서 이야기 하느라 주변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몸도 좋지 않아 혼자 쉬려고 했다.하지만 목욕탕은 엄청 시끄러웠다. 돌아다니는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여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목소리조차 듣기 어려웠다. 텔레비전 소리 때문이었다. 많이 놀랬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켜 있었다. 실망스러웠다. 왜 아무도 보지 않는 텔레비전이 켜 있을까?
그 때부터 주변을 다른 눈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식당에도 슈퍼에도 텔레비전이 있다. 슈퍼에서 일하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손님이 없으면 심심할 때 보는 것은 괜찮은데 식당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 손님이 식당에서 서로 이야기하려면 텔레비전 소리보다 크게 말해야 하기 때문에 식당이 너무 시끄러워진다. 더구나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밖에는 아무도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 텔레비전이 없는 곳이란 거의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병원에도 환자들이 화면만 나오는 텔레비전을 열심히 보며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공항에도 텔레비전이 있다. 텔레비전이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과연 텔레비전이 곁에 없으면 살 수 없을까?
내 고향 폴란드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소수이긴 하지만 텔레비전이 아예 없는 집도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텔레비전을 보기 싫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려면 극장에 갈 수 있고 뉴스는 신문에서 읽으면 된다. 특히 요즈음 젊은 폴란드인들은 회사에서 계속 바쁘게 일하기 때문에 집에 오면 텔레비전 소리에 방해 받지 않고 조용하게 쉬고 싶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
한국에는 왜 그렇게 텔레비전이 많을까? 사우나, 병원, 식당에도 심지어 보는 사람들 하나 없어도 텔레비전이 켜 있다. 전기만 낭비하는 것이 아닐까?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보는 사람들이 없는데도 습관처럼 켜 놓는 것은 오히려 방해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진짜로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예의 상 꺼달라고 말을 못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결과는 같다.
안나 파라돕스카 폴란드인 서울대 국어교육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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