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의 행복은 그냥 오는 게 아닙니다." 서울대 농대 교수로 명성을 날린 류달영(柳達永) 선생의 나이는 올해 92세다. 그러나 정말 그에게 나이는 숫자일 따름이다. 여의도에 자리잡은 그의 사무실에서 지나온 인생역정과 노후의 건강관리 비결을 들려주는 그는 얼굴이 맑고 허리가 꼿꼿하다. 청력이 약해져 보청기를 끼고 있지만 말소리는 또렷하고 힘이 들어가 있다. 스스로는 '겨우 걸어 다닐 정도'라고 말하지만 두 시간 동안의 인터뷰 내내 옛날 일을 연도까지 정확하게 기억했다. 무궁(無窮) 청년인 그는 "길 위의 돌멩이만 쳐다보고 있어도 즐거울 수 있는 마음은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장수에 대해서도 남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사람이 호흡만 오래 했다고 장수했다고 할 수 없다. 보람있는 일을 얼마나 오래 했느냐가 장수의 기준이다." 양정고보, 수원고농(서울대 농대 전신) 재학시절에서부터 농민운동에 뛰어들어, 농학자, 교육사업가로, 조국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궂은 일 진 일 가리지 않고 뛰어온 그는 남들 평균 수명의 두 배, 세 배로 살아왔다.
그가 노년에 보람을 느끼는 곳은 그의 호를 딴 '성천아카데미' 운영이다. 사무실 옆 오피스텔 4개를 얻어 운영하고 있는 성천 아카데미는 실버들을 대상으로 동서양의 고전, 미래학, 종교, 철학 등을 강의하는 정신문화교육사업이다.
"농민이 대상이 아닌 교육사업은 이것이 처음"이라는 그는 "대학 하나 키우는 것만큼이나 애정을 쏟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1991년 운영하던 수원농장의 일부가 고속도로 부지로 수용되면서 받은 '거액'을 의미있게 쓰기 위해 세운 '성천 아카데미'는 수준높은 강의로 전직 교수, 대학 총장들도 강의를 들을 정도다. 그는 아직도 이곳에서 한 달에 두 번씩 특강을 하며 성천 아카데미에서 내고 있는 격월잡지 '진리의 벗이 되어'에 칼럼과 단상을 싣고 있다.
'성천 아카데미' 이사장 말고도 한국유기농업협회 회장, 한국국민윤리학회 명예회장, 한국덴마크 명예회장 등을 맡고 있다. 또 한국덴마크협회를 만들어 30년간 회장을 맡아오다 올해에서야 명예회장직으로 물러앉았다.
또 매년 한 권의 책을 펴 내는 등 깊은 샘에서 길러 올려진 그의 에너지는 고갈될 줄 모른다. 2001년에 단상을 모은 '인생의 열쇠꾸러미'를, 지난해에는 에세이집 '대추나무'를 낸 데 이어 5월에는 자서전적 에세이집 '소중한 만남'을 펴낼 계획이다.
1998년에는 심훈의 '상록수' 여주인공 최용신의 일생을 담은 전기 '최용신의 생애'를 60년 만에 재발간했다. "이 책을 내고 감옥살이를 했지"라고 회고할 정도로 그에게 의미가 깊은 책이었다. 당시 그는 개성 호수돈여고의 교사로 재직중이었다. 수원고농을 졸업하고 '무슨 여학교 선생이냐'고 주변에서 말리는 것을 '여학생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맡은 자리였다. 심훈의 '상록수'가 사실과 달리 최용신의 연애담으로 꾸며졌다는 주변의 항의에 학생시절 최용신과 함께 농민운동을 했던 경험이 있는 그가 대표 집필로 '성서조선사'에서 출판했던 것. 이것이 그와 김교신 함석헌 등이 투옥당하는 '성서조선' 사건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마지막 원로이기도 한 그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1911년에 청빈한 한학자의 외아들로 출생, 일제시대를 고스란히 겪어 낸 그의 평생 과제는 '조국발전'이었다. 일제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농민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수원고농을 선택했고, 농촌을 돌며 야학을 했다. 해방과 함께 서울대 농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보이스카웃 창단, 한국가족계획협회 이사장을 지냈고, 중국 옌벤국립대학에 민족문화교육원을, 용정에 기술학교를 설립하는 등 쉴 새 없이 일을 계획하고 이루어왔다. 이밖에도 150여종에 이르기까지 무궁화 품종을 개량하고 새로운 품종을 찾아내, 6권의 컬러 무궁화 도록을 펴내기도 했다. 또 생존력이 강한 한국잔디에 관한 연구로 농학자로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92세 인생을 풀가동할 수 있었던 것은 신념과 철저한 건강관리 덕분이다. 몸이 약한 어머니에게서 젖을 얻어 먹지 못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약질이라 평생 건강에 신경을 써왔다는 것.
새벽 3시에 기상해 두 시간 정도 원고집필, 독서를 한 뒤 새벽 5시부터 반드시 운동을 한다. 만보계를 차고 다니는데 요즘은 몸이 힘들어 7,000보만 걷는다. 또 헬스클럽에서 운동도 한다. 아침식사는 찹쌀떡 우유 계란후라이. 점심은 밖에서 먹으며, 저녁은 같은 아파트 단지내에 살고 있는 아들내외와 함께 밥 된장찌개 등 한식으로 먹는다. 취침시간은 저녁 8시30분.
가장 중요한 건강비결은 '즐겁게 사는 것'. 욕심부리지 않고, 매사에 너그럽게 대하며,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 그의 즐거움은 세계 각국에서 모아온 불상 돌멩이 꽃병 등을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것. 수 십 년 동안 산책길에 모이를 주어 온 덕에 요즘은 그의 발치에 까지 내려앉는 비둘기 참새를 돌보는 일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몇 년 전부터 치매로 누워있는 아내(95)를 돌보아야 하는 남모를 어려움이 있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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