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전 서울대 미대 교수는 이 달 17일부터 22일 사이에 '디자인과 생활'과목을 강의할 예정이다. 1998년 2학기부터 강의를 하고 있는 김 전 교수는 해마다 정규 과목의 강의실이 정해지길 기다렸다가 강의날짜를 잡고 있다.김 전 교수의 강의는 학교측이 인정하지 않는 무학점 강의이기 때문이다. 98년 8월 재임용 탈락 이후 5년이 흘렀지만 김 전 교수의 복직과 관련한 학내 안팎의 상황에는 한 치의 진전도 없다. 개혁 성향의 정운찬 총장이 취임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이번 학기에도 김 전 교수는 어김 없이 빈 강의실을 찾아야 한다. 복직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으로 100여명을 넘겼던 무학점 강의 수강생 수도 지난 학기엔 30여명 안팎으로 줄어들어 학교 안팎의 싸늘한 분위기를 반영했다.
하지만 이달부터 김 전 교수와 함께 전국 해고교수들의 복직 투쟁이 가시화할 전망이다. 전국교수노동조합은 지난 달 18일 '교권탄압, 대학비리 척결을 위한 기자회견'을 갖고 해고교수 복직 투쟁에 나설 것을 선언했다.
교수노조는 김 전 교수와 함께 세종대 김동우 교수, 서울예대 오은희 교수,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 등과의 연대 투쟁을 올해 주요 사업으로 계획했다. 교수노조의 이 같은 적극적인 행보는 최근 대법원의 판결로 김영규 인하대 교수, 도지호 안산공대 교수가 복직하게 된데 힘입은 바 크다. 인하대 김 교수는 그 동안 사회당 청년진보당 대표, 대우차 매각반대 운동 등으로 교수 품위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2001년 2월 재단에서 구성한 징계위원회로부터 파면 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2000년 교수협의회장을 맡았던 김 교수는 총장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던 계약제·연봉제에 대한 학내의 반대 여론을 수렴, 사립대 최초로 총장 중간평가를 실시하는 등 총장 퇴진을 압박하고 있었고 재단측도 경영위기를 모면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2년에 걸친 법정투쟁 끝에 대법원은 최근 교수의 노동운동은 사회의 공익적 활동이라며 김 교수의 파면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도지호 안산공대 교수는 대학의 민주적 운영을 촉구하다 2001년 한해 동안 학교로부터 자진 사퇴를 종용받고 1년 이상 수업권을 박탈당했다가 지난해 1월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재단측은 도 교수가 제기한 교원지위존재확인 소송의 결심 공판을 앞두고 올해 1월 도 교수를 같은 재단 산하 대학인 김천대 조교수로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이처럼 사립대 재단측과 마찰을 빚은 교수를 특별한 이유 없이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사례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98년 3월 세종대 회화과 교수로 임용된 김동우 교수는 학교 조각상 제작을 의뢰 받아 1년에 걸쳐 '모자상'을 만들었으나 8등신으로 제작하라는 학교측 요구를 거부하고 4등신의 조각상을 그대로 세워 2001년 말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김 교수를 임용할 조소과가 없다는 것. 이사장을 배경으로 둔 교수와 갈등을 빚었던 서울예대 오은희 교수는 출석부 성적 변조 등을 이유로 지난해 12월 해임된 상태. 동덕여대 김준덕 교수도 재임용 탈락 통보를 받았고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도 변칙적인 인사권 운용 때문에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서울대 미대 김 전 교수는 전체 해고 교수들의 문제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로 떠오르면서 재임용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지만 학교측은 여전히 무덤덤한 반응이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98년 김 전 교수 재임용 탈락 이후 다른 교수 10명과 함께 '재임용 관련 직권 사용의 문제점 지적'이라는 문건을 학교측에 전달한 적이 있지만 총장 취임 이후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 지난해 연말 서울대 민교협측이 제시한 서울대 미학과를 통한 우회적인 복직안도 흐지부지한 상태.
김수행 김민수 복직 대책위 대표는 "정 총장이 최근 사석에서 '김 전 교수 문제는 미대 교수들과의 화평을 통해 해결할 문제지 내가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고 말해 더 이상 총장 결정을 기다릴 수 없게 됐다"며 "6일 대책위 회의를 가진 뒤 교수노조와 함께 학내에서 투쟁을 벌이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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