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위험요인은 북한인가, 미국인가.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한미 갈등은 결국 이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으로 요약된다. 3·1절 서울에서 있었던 상반된 '좌·우 집회' 역시 이 차이로 뚜렷이 대비됐다. 하루하루 가팔라지는 핵위기를 두고 중간에서 대립하고 분열하는 모습을 확인하게 돼 혼돈이 심하다. 지난 1월 나온 미 헤리티지 재단의 한 정책보고서도 한국 내 반미감정 해소를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면서 한미 간 이견이 북한과 미국 중 어느 쪽을 위험시하는가의 차이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헤리티지 재단의 에드윈 퓰너 이사장을 만난 것은 2001년 1월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취임식 참관을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일행들과 함께 재단을 찾은 자리였다. 래리 워츨, 발비나 황 등 아시아 및 한국의 안보문제 전문 연구원들과도 토론할 기회를 가졌던 것이 이후 내내 유용했다. 한국의 새 정권 출범과 함께 한미관계 이상이 부각되는 것처럼 당시엔 미국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면서 한미·북미관계의 변화에 관심이 집중되던 때였다.
■ 미국의 새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대북정책을 놓고 한미관계가 갈등을 빚을 소지가 없을 것인지를 궁금해 하면서 만난 퓰너 이사장은 명쾌하게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궁금증이 가셨을 뿐 아니라 앞으로 북한문제와 한미관계에서 일게 될 변화도 어렴풋이 예견할 수 있었다. 그는 대북정책에서 상호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햇볕정책이 이런 상호주의의 단계를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정권의 대북관을 '현장확인'하면서 미국의 새 정부와 김대중 정부 간 갈등이 빚어질 것이라는 예감을 가질 수 있었다. 마치 정책산실의 속살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 그리고 얼마 뒤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김 대통령이 호평했던 김정일에 대해 "회의적(skeptical)"이라고 직설, 양국관계는 풍파가 났다. 퓰너 이사장과 이 재단이 부시 정부에 깊숙이, 그리고 정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실감한 것이 그 때였다. 최근 논란화한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보면서 헤리티지의 견해가 궁금했다. 그래서 읽게 된 게 1월의 보고서인데, 이 글은 한국에서 반미가 계속될 경우 미군의 전방 배치와, 아마도 한미동맹 자체까지도 재평가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며칠 전 미국이 2사단의 재배치 방침을 우리 정부에 밝혔다는 보도가 있었다. 동맹의 재평가 방침까지도 나오게 될 건지 양국관계가 정말 난국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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