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에서 각종 통신 단말기용 부품을 제조하는 K사. 지난해부터 주 거래처였던 대기업 S물산과의 거래를 끊고 해외 수출에만 전념하고 있다. 매출은 예전만 못하지만 수익성은 훨씬 나아졌다는 것이 한 모사장(46)의 말.그는 "대기업과 거래하다 보니 이래저래 손해 보는 일이 많아 경영이 몹시 어려웠다"며 "지난해 미국과 일본 시장을 개척하면서 살 길을 찾았다"고 말했다.
침체된 내수시장을 떠나 수출에서 활로를 찾는 중소기업들이 점점 늘고 있다. 대기업 납품 일변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해외 판로 개척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중기 수출액도 수년째 계속 증가하는 등 중기 부활의 희망이 북돋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최근 발표한 '중기 수출현황'에 따르면 어려운 대내외 여건에도 불구하고 중기 수출은 4년째 계속 늘었다. 1999년 490억 달러에 불과했던 중기 수출액은 2000년 600억 달러로 22% 뛰었고, 2002년에는 680억 달러로 늘어났다.
전체 중기 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도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제조업 중기의 연간 판매총액에서 수출의 비중은 99년 19.1%였으나, 2000년에는 21.6%로 증가했고, 2002년도에는 25%까지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소기업들이 수출 확대에서 기회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납품업체에 불리한 거래 관행 때문이다. 좁은 내수 시장에서 대기업과 주종관계나 다름없는 '갑-을' 관계를 맺다보니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더라도 수요를 움켜쥔 대기업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어 적정 마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K사의 경우 3년 이상 S물산에 자재를 납품하면서 납품가 인하만 6차례를 겪었다. 매번 5% 이상 가격을 쳐내다 보니 2년전부터는 제값도 못 받고 물건을 내주게 됐다. 그나마 자금 융통을 위해 대금으로 받은 3개월짜리 어음을 할인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중기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중소 제조업체의 80%가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부당한 납품가 인하 요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중 절반 이상이 불규칙 발주(54%)와 무리한 납기 단축 요구(47%)에도 시달리고 있어 대기업-중기 간의 거래관행 시정이 시급하다.
중기 총매출에서 대기업 납품액이 차지하는 비율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99년 52.4%에 달했던 것이 2000년 45.6%로 사상 처음 절반 아래로 떨어진 이래, 2002년에는 30%대가 예상되고 있다. 불과 3년 만에 3분의 2 가량으로 줄어든 셈이다.
내수에서 수출로 방향을 전환하는 경향이 확산되면서 KOTRA, 중기진흥공단 등 수출 지원 기관을 찾는 중기들도 늘고 있다.
수출 컨설팅 지원사업을 벌이는 중진공 관계자는 "답답한 내수 시장에 한계를 느끼고 해외 마케팅 상담을 위해 찾아오는 중기 경영자가 매일 줄을 잇는다"고 말했다. 중진공은 이중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모아 지난해 말 '중기 글로벌 마케팅 성공사례'도 펴냈다.
하지만 중기의 수출 열기를 우려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인력난, 자금난 때문에 해외로 떠나는 중기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수출 집중 현상은 국내 제조업 공동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기청 고위관계자는 "수출로 성공한 중기가 비용 절감과 현지화를 위해 생산설비를 수출 대상국으로 아예 옮겨가는 경향이 나타난다면 국내 고용과 경기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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