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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폴란스키 감독의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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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폴란스키 감독의 신세

입력
2003.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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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전적 영화 '피아니스트'(The Pianist)로 올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른 폴란드계 프랑스인 로만 폴란스키(69·사진)의 영화는 보는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이 영화는 그의 소년시절 경험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7세 때 부모가 나치수용소에 감금됐고, 어머니는 거기서 사망했다.

폴란스키는 크라코우의 게토를 탈출, 시골을 전전하며 가톨릭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생존했는데, 이 과정서 독일군의 사격놀이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폴란스키의 이런 성향은 그를 국제적 감독으로 올려놓은 데뷔작 '물속의 칼'(Knife in the Water, 1962년)에서부터 발견된다. 히치 하이커 대학생과 주말 요트항해에 동반한 부부간에 발생하는 긴장감을 그린 뛰어난 심리 드라마로 마음을 아주 불안하게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두 영화 '혐오'(Repulsion, 1965년)와 '세든 사람'(The Tenant, 1976년) 모두 괴이한 심리극이다. 성적욕망을 억제하던 여인(카트린느 드뇌브)의 정신적 붕괴를 그린 '혐오'는 보고 나서 며칠간 께름칙한 기분이 들고, '세든 사람'은 전입주자가 자살한 아파트에 세든 심약한 남자(폴란스키)의 공포물로 카프카의 작품 분위기가 강하다.

미아 패로 주연의 현대판 마녀영화 '로즈마리의 아기'(Rosemary's Baby,1968년)도 역시 심리공포 스릴러. 그러고 보니 폴란드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실화인 '피아니스트'도 일종의 공포영화다.

폴란스키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는다 해도 할리우드에 돌아 올 수 없는 신세다. 미국법을 어기고 달아난 도망자이기 때문. 그는 1977년 43세 때 잭 니컬슨 집에서 배우 지망생인 13세 소녀에게 약물과 술을 먹인 뒤 섹스를 해 법정에 섰고, 이듬해 선고 공판일에 프랑스로 도망가 지금까지 파리서 살고 있다.

폴란스키가 감독상 후보에 오르자 할리우드에서는 다시 한번 예술과 도덕의 문제가 거론되며, 동시에 그를 용서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동성희롱에 대한 혐오감이 팽배한 요즘 미국 분위기로 봐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 폴란스키는 미국서 활동할 때인 1969년 8월 아내이자 배우로 임신 8개월이었던 샤론 테이트(26)와 그의 친구 7명이 '맨슨 가족'에 의해 난자를 당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풍자만화잡지 M.A.D의 쥐 얼굴을 한 주인공을 닮은 폴란스키는 작달만한 키에 귀재형. 설사 그가 할리우드에 돌아온다 해도 요즘처럼 블록버스터 일변도의 풍토에 적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할리우드는 뛰어난 영화인을 하나 잃은 셈이다.

/LA영화비평가협회원·한국일보 미주본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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