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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부모姓 함께 쓰기' 목표지상주의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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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부모姓 함께 쓰기' 목표지상주의 아닌지…

입력
2003.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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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미국 할리우드에선 '미스터 티'라는 흑인 배우가 꽤 이름을 날렸다. '미스터 티'는 본명이 아니며 그가 무명의 설움을 겪을 당시 이름에 아예 'Mr.'란 존칭을 넣은 것이다. 이름에 존칭이 있으므로 남들이 자기를 높여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또 미국의 어느 죄수는 당국을 상대로 기막힌 헌법 소원을 냈다. 당국에 개명 신청을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아 인격권이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죄수가 고친 이름에 있었다. 무려 장편소설 한 권 분량이어서 제대로 부르려면 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이 죄수는 교도관이 자기의 고친 이름에서 한 글자라도 빼먹으면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두꺼운 이름 책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는 교도관 얼굴이 보이는 듯 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 같은 소신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필자가 얼마 전 알게 된 한 남자의 성(姓)은 부모 성을 하나씩 따서 '연사'였다. "그럼 부인의 성은 어떻게 됩니까?" "집사람은 '금지'입니다."

필자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럼 나는 부모님의 성을 하나씩 따면 '김전'(金田)이다. 한자로는 '금전'이므로 일부러 창씨개명을 할 필요없이 자연스럽게 일본식으로 '가네다'라고 읽어줄 것이 아닌가. 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 맞는 훌륭한 이름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 남자의 자녀가 성을 만들면 '연사금지' 네 글자가 된다. 그러면 그 손자들의 성은 여덟자가 될 테고 그런 식으로 가면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도 남의 성을 부르려면 책을 들고 읽어야 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실제로는 귀찮기 때문에 성을 네 글자 이상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가 생기면 부모는 모두 합쳐서 네 글자인 자기들의 성 중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지 의논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성이 미리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카드'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멋진 신세계'가 오는 것일까. 그런 시대가 오는 것이 좋을까.

필자는 어느 이념이나 주장을 폄하할 의도를 갖고 있지는 않다.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 자신의 이념이나 주장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됐다고 여긴다면 정중히 사과드린다. 다만 우리가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합리화되는 목표지상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노파심을 갖고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다. 남들로부터 존칭을 받으려던 흑인 배우 미스터 티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두들 그를 "야, 티!"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김 형 진 인터넷칼럼니스트·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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