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에서 추진되어온 행정개혁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고객주의이다. 국민을 고객처럼 모신다는 것이다. 정부가 제공하는 행정 서비스는 이 고객주의의 관점에서 네 가지로 구별된다.첫째는 고객무시 행정이다. 얼마 전 국내 일간지들이 우리 정부의 과다 규제 행위를 크게 기사화한 적이 있었다. 공장을 새로 짓기 위해서 관청에 100번을 오가야 한다는 얘기, 이러한 과다 규제를 피해서 해외로 공장 자체를 이전하는 이른바 기업이민이 늘고 있다는 얘기 등 믿기 어려운 사례들이 가득 지면을 메웠다. 작년 하반기 어느 유력지가 43개 주한 외국 기업에 대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한국 투자의 최대 걸림돌은 여전히 공무원'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이와 같이 고객을 무시하는 행정이 만연하면 국내 기업도 이민가고 외국기업도 들어오지 않아 우리 경제가 멈출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이것을 '올 스톱' 서비스 행정이라 부를 수 있겠다.
둘째는 고객만족 행정이다. 국민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 행정이다. 최근에 전자정부제도가 일부 민원업무에 도입되고 동사무소 행정 등도 과거에 비해 시민들의 만족감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크게 개선된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는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 관청에 100번을 가야 했는데 그것이 50번, 10번 정도로 줄 수 있다면 이른바 '퓨(few) 스톱' 서비스로 그만큼 국민들의 만족감은 증진될 것이다.
셋째는 고객감동 행정이다. 최근에 선진국에서 개발되고 우리나라에서도 여기저기에서 거론되는 이른바 '원 스톱' 서비스가 이에 해당된다. 예전에 민원처리를 위해 여러 곳을 여러 번 들러야 하던 것을 이제는 도장을 받아야 할 관련부처의 직원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장소에 들러서 단 한번 방문으로 만사가 해결된다면 국민은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 넷째는 고객 '졸도' 행정이다. 이 행정 서비스를 '논스톱(non-stop)' 서비스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대처 총리 시절 영국의 '발명품'이다. 대처 총리는 당시 비효율의 상징이었던 100여개의 탄광을 폐쇄하고 불법적인 총파업을 벌인 석탄노조와의 1년여에 걸친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폐쇄된 탄광 마을에 유수한 외국 기업들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유수한 자동차 회사는 물론 삼성, LG 등 우리 기업들도 그곳에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진출했던 우리 기업 공장의 현지 사장들로부터 들은 얘기다. 민원이 생겨서 행정 서비스를 받을 필요가 있으면 관련 부서에 전화를 건다. 그러면 관련 직원이 공장을 방문해서 일을 처리해 준다. 거리가 먼 곳인 경우에는 비행기를 타고 와서 민원사항을 처리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전화 걸고 기다리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기업이 요청하면 관련부서 직원을 아예 공장에 상주시켜 준다고 한다. 공장을 새로 짓기 위해 100번을 오가야 했던 기업인이라면 가히 '졸도'할 수밖에 없는 수준의 행정 서비스이다. 이와 같은 '논스톱' 서비스 행정에 힘입어 영국에서의 해외직접투자는 획기적으로 증대되었다.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는 1999년 이후 3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고 2002년에는 1년 전에 비해 20%나 감소했다. 우리 경제의 발전을 위해 외국인직접투자 증대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투자의 최대 걸림돌은 여전히 공무원'이라는 주한 외국 기업들의 고언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원 스톱', 더 나아가 '논스톱' 차원의 행정 서비스 개혁의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며칠 전 발표된 노무현 정부의 첫 내각에 대해 '파격' 내지 '실험' 내각이라는 평들이 지배적이다. 새 정부에 대해서 국민들을 가히 '졸도'시킬 만한 '논스톱' 서비스 차원의 행정개혁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이 계 식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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