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상처를 남긴 너는 현재 마이너스 128만점. 이승에서는 회복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셈. 날 버리고 간 너, '다음 세상에는 지저분한 공중 화장실의 파리잡이 끈끈이나 냄새 나는 변기 속 나프탈렌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악담을 퍼붓다가도 연애의 기억 속에 녹아 있는 온갖 자잘하고 사소한 일들이 문득문득 생각날 때면 다시 전화를 걸어 '어디야? 지금 뭐해? 나 보고 싶진 않아?'라고 불쑥 물어보고 싶은 법.남녀간의 헤어짐은 대부분 치사하게 마련이다. 멀쩡하던 애인이 어느날 갑자기 '나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두 눈 바로 뜨고 당당하게 밝혀 왔다면, 그 치사한 행동에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하고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왁스(사진)의 '부탁해요'와 박화요비의 '도움'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소금 맞은 지렁이마냥 견딜 수 없는 고통의 기억에 시달리고 가끔씩 치미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겠다는, 억울하게 차인 모든 사람들에게 이 두 노래는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곡 같다고 할까.
'부탁해요'는 옛 연인의 새 여자친구에게 하는 부탁을 담고 있다. '그 사람을 부탁해요 나보다 더 사랑해줘요/ 보기에는 소심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괜찮은 남자예요'라는 노래의 앞부분까지를 듣고 있자면 여느 이별 노래처럼 청승맞을 뿐이다. 하지만 '술을 많이 마셔도 속이 좋지 않아요/ 하도 예민해서 밤잠을 설치죠/ 밤에 전화할 땐 먼저 말없이 끊더라도 화내지 말고 그냥 넘어가줘요'라고 마치 결혼식장의 신부 아버지처럼 다정하고 꼼꼼하게 '인수인계' 하는 너그러움은 놀라울 따름이다.
박화요비의 '도움'도 비슷한 내용. '뜨거운 커피보다는 찬 것을 즐기죠/오른편에서 걷는 걸 편하게 느끼죠/ 거짓말 하나 못하는 착한 사람이죠.' 당부는 계속 이어진다. '미안하단 얘기는 자주 하지 마요/ 그 사람 눈물 흘릴 땐 못 본 척 해줘요/ 지난 사랑의 상처가 깊은 사람이죠/ 헤어지자는 얘기는 쉽게 하지 마요.'
노래에서처럼 비록 차였지만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면 실연이 아니다. 진짜 실연은 헤어진 연인에게 인간적으로 환멸을 갖게 되는 경우가 아닐까. 너그럽게 그저 예쁜 모습만 기억한 채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진짜 아름다운 사랑은 금세 찾아오지 않겠는가?
/최지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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