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도시 전체가 공사장입니다." 1997년 쓰촨(四川)성의 일개 도시에서 직할시로 승격한 충칭(重慶)시는 도시 건설공사로 망치 소리가 그칠 날이 없다. 어느 곳에서든 고개만 들면 10여개의 공사장 타워크레인이 눈에 들어 올 정도로 시 전체가 공사판이다. 공사장 먼지는 안개 도시인 충칭의 하늘을 더욱 뿌옇게 만들고 있다.서부 최대의 공업도시
남한보다 조금 작은 면적의 충칭(8만2,400㎢)은 인구 3,090만명의 세계 최대 도시이다. 97년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인근 현들을 편입해 거대도시가 됐다. 충칭은 또 서부 최대의 공업 도시이다. 냉전시대 중국 군수업체들이 이곳에 집중적으로 건설되면서부터 그렇게 됐다. 당시 미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내륙 오지인 이곳에 군수업체를 건설했고, 덕분에 자연스럽게 공업기반이 정비된 것이다.
한 한국 기업인은 "몇 년 전 합작문제로 충칭의 한 업체를 방문했을 때 제품 생산 라인 옆에서 포탄이 제조되고 있어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강한 경쟁의식
충칭 시민들의 성격은 괄괄하다. 척박한 환경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도시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 구릉지대여서 평지를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충칭의 옛 별칭은 산성(山城)이었다. 패주를 거듭했던 국민당 정부가 일본군을 피해 이곳을 임시수도로 정한 이유도 험준한 지형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충칭에서는 자전거를 찾아볼 수 없다. 대신 2개의 광주리를 장대에 얹어 운반하는 짐꾼 '빵빵이'가 충칭의 풍물로 자리잡았다.
이 같은 거친 환경은 충칭인들을 더욱 적극적이고 도전적으로 만들었다. 충칭 경제기술개발구(특구)의 관계자는 "다른 특구의 절반 비용으로 외국업체의 충칭 특구 입주가 가능하다"며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적극성이 엿보였다. 길거리에서 충칭의 별미인 딴딴면을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경쟁의식이 느껴졌다. 이런 기질은 충칭이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들은 서부대개발의 선두주자로 자부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성격과 비슷하다는 것이 현지 조선족들의 평가다.
발전 방향
공업기반이 탄탄한 충칭은 물류와 첨단 산업에 초점을 두는 발전전략을 채택했다. 중국 제1의 오토바이 생산지이자 3위의 자동차 생산지인 충칭의 전통 공업 지표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는 상태이다. 2009년 싼샤(三峽)댐이 완공되면 양쯔(揚子)강 물길을 이용해 하류 상하이까지 대량 물류수송이 가능해진다.
이 같은 여건에 힘입어 대량 물류기지로 성장하려는 충칭의 의지는 강력하다. 시는 현재 5,000억원을 들여 시내에 1만톤 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2개의 부두를 건설 중이며, 30분내 시내 모든 지역에 도달할 수 있는 도심고속도로를 정비하고 있다. 인근 서부대개발 거점도시들과 동남부 연안을 잇는 고속도로는 이미 완성했다.
그러나 첨단 산업 분야는 아직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국내외 일부 정보통신 업체들이 휴대폰 기판 등을 생산 중이지만 이 같은 첨단산업이 충칭시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미만이다.
충칭이 중국 연안도시와 다른 서부대개발 거점 도시들처럼 첨단산업 육성에 역점을 두는 것은 비효율적인 중복 투자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충칭시 관계자는 "첨단산업을 육성해야만 전통산업이 육성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서부대개발의 거점 도시는 사실상 웬만한 나라들의 수도에 비견되기 때문에 모든 거점도시는 완결된 산업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충칭시는 한국의 첨단 기업과 환경관련 기업의 진출을 바라고 있으며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의 진출을 선호하고 있다.
충칭의 발전전략을 뒷받침하는 것 중의 하나는 직할시로서 갖고 있는 이점이다. 다른 거점 도시들은 성(省) 정부로 내려오는 중앙정부의 지원금을 나눠 갖지만 충칭은 1개성 규모의 지원금을 독차지하고, 행정의 자율권을 폭넓게 행사할 수 있다.
유흥소비업 번창에 따른 부패 그늘
서부에서 건설 경기가 가장 좋은 충칭에서는 유흥 소비 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20∼30대 직장인을 위한 라이브 카페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접대 문화도 만만치 않다. 유흥업소와 일반 판매점의 소득세가 지방세이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유흥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충칭은 정도가 심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충칭의 부패정도는 중국 평균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충칭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은 포스코가 유일할 정도로 우리 기업의 진출은 미미한 상황이다. 자오준시앤(趙儁賢) 충칭 캉다 환경보호 유한공사 사장은 "미국과 일본 등에 비해 한국기업의 서부 진출이 매우 부진하다"면서 "중국인들은 같이 고생한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열지만 열매만을 따먹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야박하다"고 말했다.
"한국기업이 서부 개발이 끝나고 시장 형성이 완료된 뒤 진출한다면 쓴맛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경고로 들렸다.
/충칭=글·사진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 캉다 환경보호 유한공사
충칭시의 환경보호산업은 중국 특유의 '압축성장' 을 그대로 보여준다.
충칭 캉다(康達) 환경보호 유한공사는 2001년 충칭시정부 환경보호국에서 분리된 민영회사. 최근 이 회사는 충칭시가 발주한 20여개의 오폐수 정화시설 입찰에서 8건을 따내며 매출액 규모 1억5,000만 위안(232억원) 규모의 환경업체로 발돋움했다. 자오준시앤(趙儁賢) 사장은 "더 낙찰 받을 수 있었지만 충칭시 정부의 권유로 다른 기업들에게 양보했다"고 자랑했다.
초보 단계인 환경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공조직을 민간조직으로 전환하고 정부 발주 사업을 사실상 독점토록 함으로써 선도 공룡기업을 육성하는 중국 특유의 정책이 이 업체를 통해 확인됐다.
충칭시의 환경보호산업 육성은 중국 중앙정부 차원에서 힘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다. 싼샤댐 완공이후 댐 상류의 충칭시 양쯔강 수질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중앙 정부는 충칭시 일원 30여 곳에 오폐수 정화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향후 5년간 60억위안(9,000억원)을 쏟아 부을 예정이다.
충칭시 당료 출신인 趙사장은 "현재 독일과 일본 기업들과 제휴해 환경시설을 건설 중"이라며 "한국기업도 관심이 있다면 캉다와 같이 튼튼한 기업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왕밍잉 특구관리위 부주임
웬만한 시 면적 보다 큰 충칭 경제기술개발구(특구·140㎢)의 관리책임자는 호탕한 여장부였다.
왕밍잉(王明瑛·47·사진) 특구 관리위 부주임은 "중국과 충칭시가 우선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서슴없이 중국 공무원사회의 비효율성을 꼬집었다. 또 "중국 서부는 소비욕망은 있지만 소비 능력이 없는 지역"이라며 걸음마 단계인 서부 대개발의 현주소를 되짚었다.
그는 "중국에서 가장 앞선 공무원은 누가 뭐래도 특구 공무원들"이라며 "외국 사정을 잘 알고 국제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특구 공무원들의 활약은 중국 젊은이들의 인식 전환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직선적이고 괄괄한 충칭인의 기질을 그대로 표출했다. 인근 서부 대개발 거점 도시인 우한(武漢), 청뚜(成都)시 등과 충칭의 경쟁력을 비교해달라고 하자 비교 대상이 잘못됐다는 듯 불편한 표정을 짓더니 대뜸 "공업 기반 등의 측면에서 충칭이 제일 낫다. 보면 알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두둑한 배짱 뒤에는 기술관료로서의 화려한 경력이 있다. 베이징 항공대학 출신인 그는 전투기 등을 만드는 군수 업체에서 일하면서 이공학부 전공자 중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았다. 냉전이 끝나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4년간 경제학을 공부했고, 1993년 귀국하자 마자 특구 업무를 맡아 지금까지 10년째 외자유치사업을 관장하고 있다.
22개국 337개 외국기업과 1,300여개 중국기업이 입주해 있는 충칭 특구의 토지 임대료는 1㎡ 1,000위안(15만원)으로 상하이의 절반도 안된다. 세금도 다른 지역보다 매우 저렴하다. 그는 이처럼 파격적인 입주조건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쳐 충칭을 중국의 대표적인 특구로 만들어가고 있다.
/충칭=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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