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쳤던 3월 1일, 네 개의 서로 상반된 집회가 열렸다. 서울시청과 여의도에서 각각 '반핵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금식기도회'가 있었는가 하면 광화문과 워커힐에서 '3·1 민족자주반전평화실현 촛불대행진'과 '남북종교인 3·1 민족대회'가 개최되었다. 다같이 3·1 정신을 기리는 집회지만 입장이 너무 달라 우리 사회의 이념적 양극화가 심각함을 보여주었다.우리는 정말로 보혁(保革)의 양극으로 갈라져야 하고 다같이 합의할 수 있는 제3의 방안은 없는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국민은 말은 안 해도 다 속으로 중심을 잡고 있다. 그런데 이 중심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한편으로 치우친 목소리만 크게 들리니까 정반대의 목소리가 다시 커져 사회가 나뉘어지는 것이다. 최근에 커진 보수세력의 결집현상도 따지고 보면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의 촛불시위가 상궤를 벗어난 것에 대한 반작용이다. 따라서 양극화가 극복되려면 중간에 있는 목소리가 크게 들려야 한다.
최근 이념적 양극화 현상은 촛불시위에서 촉발되었다. 촛불시위가 잘못된 평결에 대한 미국의 사과와 동등한 한미관계를 원하는 순수한 국민감정의 표출로만 갔으면 촛불시위는 적절한 시점에서 잘 마무리되고 국민의 마음속에 아름답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시위 지도부는 이를 반미운동으로 끌고 갔고 그 결과 부작용만 키웠다. 국민의 반미감정이 커져 한미관계가 어려워지고 한국경제와 안보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 때문에 보수의 목소리가 커지고, 촛불시위 참가자는 크게 줄었다.
여기에 북핵문제가 터지고 북미관계가 악화하면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3·1 민족대회에 참석한 북한인사가 '핵전쟁의 검은 구름을 민족자주로 막자'는 연설을 했고 민족대회는 남북간 민족공조로 전쟁을 막자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숨은 사정이 있었겠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는 평화적인 남북관계를 원하고 동포애적인 인도적 지원도 계속되기를 원한다. 3·1절 시청 앞 집회의 반김 구호를 이해하면서도 이에 동조하지 않는 이유는 공연히 북을 자극하고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상황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반도 평화의 근원을 뒤흔드는 북핵문제에 눈감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오늘의 위기가 북한의 핵개발 의혹에서 비롯된 만큼 이에 대한 투명한 해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북의 주장대로 북에 핵무기가 없고 핵개발의 의사도 없다면 한국 측이 이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북이 바라는 '민족공조'는 그 다음의 과제다.
우리는 미국에 대해서도 심경이 복잡하다. 한국국민은 3만7,000명의 미군이 한국전에서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그 후에도 미국의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가능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지금도 한국은 미국의 '응석받이' 동맹이다. 국가간의 관계가 얼마나 동등한가는 레토릭이 아닌 국력에 의해 영향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좋든 싫든 돈독한 한미관계를 원하고 주한미군의 주둔을 원한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안보에 대한 영향은 둘째치고 경제부터 심각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행정부 이후 더욱 두드러지는 초강대국으로서의 오만과 십자군적인 독선이 대이라크전쟁 위기처럼 한반도에서도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 주한미군은 어디까지나 전쟁억제를 위해 존재해야지 전쟁을 일으킬 목적으로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로도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돈독한 한미관계를 원하면서도 성조기를 들고 친미구호를 외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 경 석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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