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 3월3일 독일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1918년 독일 할레에서 몰(沒). 칸토어는 집합론의 창시자다. 무한집합론을 중심으로 한 칸토어의 업적이 수학이라는 학문 전체, 특히 해석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근본적으로 이바지했다는 사실이 공인되기 시작한 것은 그의 만년에 들어서다. 그러나 이 영광은 너무 짧았다. 칸토어 생전에 이미 그의 집합론을 허물어뜨리는 역설들이 여럿 제출됐다. 버트런드 러셀이 제시한,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가지지 않는 집합 전체로 이뤄진 집합은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가지는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역설이 대표적이다.칸토어 만년의 이론적 불행은 장년 이후 일상의 불행에 견주면 오히려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39세에 처음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그는 73세로 죽기까지 집보다 병원을 주된 거처로 삼았다. 수학계에서의 고립도 그의 병세를 악화시켰다. 베를린대학의 스승이기도 했던 레오폴트 크로네커와의 불화는 이론적인 데서 머무르지 않고 감정의 속살로까지 이어졌다. 당대 수학계의 권력은 크로네커 쪽에 있었으므로, 이 불화로 손해를 보는 것은 늘 칸토어 쪽이었다. 론 하워드 감독은 수학자 존 내시의 아픈 삶을 '뷰티풀마인드'라는 영화에 담은 바 있지만, 만일 그가 칸토어의 삶에 눈길을 주었다면 영화 속에서 빛과 어둠의 대조는 한결 더 또렷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수학계가 칸토어의 무한론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의 이론은 오직 확실한 것으로만 가득찬 듯 보였던 수학의 세계를 뿌리부터 뒤흔들며 이 학문의 바탕을 새롭게 점검해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칸토어는 "수학의 본질은 그 자유 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마음이 자유를 잃은 것은 그가 추구한 자유가 너무 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고 종 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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