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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유관순 집안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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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유관순 집안의 여인들

입력
2003.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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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3월을 맞으며 유관순 열사를 생각한다. 민족의 심장에 뜨겁게 새겨진 이름 유관순, 그는 우리 모두의 영원한 언니고 누나다.이화학당 시절 단짝 친구였던 보각스님은 유 열사가 "명태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기도를 끝내 한 방 친구들이 배를 잡고 웃다가 단체로 벌 받던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친구 집에서 부쳐준 명태 반찬을 맛있게 먹고 저녁 기도시간에 장난치다가 사감 선생님께 들켰던 것이다.

그 천진난만한 소녀가 고향의 3·1 만세운동을 주동하여 옥에 갇히고, 옥중에서도 밤마다 "대한독립만세"를 불러 모진 고문을 받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의 나이 18살, 부모는 만세운동 현장에서 일경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나고, 오빠는 투옥되고, 두 어린 남동생은 마을을 헤매고 있었다.

그 집안은 어떻게 되었을까. 최근 한 모임에서 유관순 가(家) 종부인 김정애(69)씨를 만나 집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김 여사가 전하는 그의 시어머니 조화벽 여사의 이야기는 특히 감동적이었다.

강원도 양양의 부잣집 외딸로 태어나 개성의 호수돈 여학교를 졸업한 조씨는 공주 영명학교 교사로 가게 됐고, 그곳에서 오 갈데 없는 두 소년을 돌보게 되었다고 한다. 유관순 열사의 동생들(인석 관석)이었다.

감옥에서 6개월을 복역하고 영명학교 학생으로 돌아온 유 열사의 오빠(준석, 나중에 우석으로 개명)는 세 살 위인 조씨를 누이라고 부르며 따르다가 "결혼을 안 해주면 죽어버리겠다"며 열렬하게 청혼했다. 그들은 두 동생을 데리고 양양으로 가 살았다. 그곳엔 조씨의 부모가 세운 교회와 정명학교가 있었는데 조씨는 정명학교의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그들은 세 아들을 두었으나 맏아들(제충)만 남고 둘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제충씨와 결혼한 김정애씨는 경기여고와 고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국제조직을 전공한 재원이었다. 뭔가 큰 일을 꿈꾸던 그는 유씨 집안의 며느리가 된 후 "이 집에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중앙여고 교사로 취직하여 34년 근속했다.

시아버지와 남편은 독립노농당에 가입한 아나키스트였다. 당국은 독립노농당을 공산당보다 더 위험한 당으로 백안시하고 탄압했다. 일제시대에 감옥을 이웃집 드나들 듯 하던 유 열사의 오빠는 해방 후에도 '위험인물'이었다. 아들까지 뜻을 같이 했으니 살림살이는 여자들의 힘으로 꾸려야 했다.

3·1 만세사건 때 조화벽씨가 버선에 독립선언문을 숨겨 공주에서 양양까지 들고 가서 교회 청년들에게 전함으로써 그곳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1970년 대에 한학자가 찾아냈다. "왜 그 얘기를 지금까지 안 하셨느냐"고 며느리가 묻자 조씨는 "시부모님과 시누님이 순국하신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하찮은 일을 어찌 입밖에 내겠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시어머님은 여장부셨어요. 80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독립운동가 집안의 며느리라는 긍지로 그 어려운 살림을 견디셨지요. 그러나 노년에는 한평생 시아버님으로부터 저고리 한 벌 못 얻어 입었다고 여자다운 불평도 하셨어요. 저도 남편에게서 저고리 한 벌 못 얻어 입었어요. 시아버님도 남편도 직업이 정당인이었으니 수입이 없었거든요."

'정당인'은 독립운동가나 마찬가지로 지사(志士)라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유관순 열사 댁의 종부들은 그런 생각으로 '저고리 한 벌 못해 주는' 가장들을 섬겼고, 자신의 '하찮은 공'을 숨겼다.

"너희들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니 이 다음에 돈을 벌면 기념사업으로 할 일이 얼마나 많으냐. 그러니 이보다 더한 부자가 어디 있겠느냐"라고 시어머니는 가난 속에서 가족들을 독려했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그리고 그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할 일을 못한 것이 늘 부끄럽다"고 말했다.

유관순 열사의 올케와 조카며느리가 이처럼 든든하게 집안을 지켜왔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런 일인가. 우리 모두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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