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지음 문학동네 발행·8,800원'내가 만난 시와 시인'은 이문재(44)씨가 우리 시대의 시인 20명을 만나 나눈 시와 삶 이야기다. 그 자신 시인인 이씨는 "한국 현대시의 위대한 성취는, 시 못지않게 그 삶에서 흘러나오는 많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소설에서 작가의 이력을 헤아릴 수 있는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찰나의 영감과 응축된 언어로 맺히는 시에서 삶 체험을 찾기란 쉽지 않다. 시인이 시인을 만나서 들은 속얘기는 내밀하고 따뜻하다.
이성복 황지우 도종환 장석남 이윤학 함민복씨 등이 전하는 삶과 사유는 시가 옷을 벗고 드러낸 몸뚱아리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던 섬소년 장석남. 첼리스트를 꿈꿨으며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기도 했던 장석남 시인은 지금도 술이 거나해지면 "나는 딴따라를 했어야 했는데"라고 말하곤 한다.
비오는 날 밤, 장석남 시인에 대한 이문재 시인의 소묘는 한 편의 시다. '수만 개의 양동이로 물을 퍼부어대는 것 같은 폭우가 내렸다.
장석남 시인은 그 비를 바라보며 "비의 허리 좀 봐"라며 입으로 시를 썼지만, "사실은 버틸 때까지 버텨보는 것"이라는, 시가 아닌 산문이 곧 이어졌다.'
어머니가 보육원 총무였던 여자 아이는 고아 친구들과 함께 자라났다. 가족을 다사롭게 감싼 종교와 대학생활을 뜨겁게 불지른 사회과학 사이에서 갈등하던 여자는 비좁은 가운데길, 문학을 택했다.
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데 왜 소설이 아닌 시를 쓸까. '나희덕 시인은 웃으면서, 거리감각이 부족하다고 했다. 다른 존재를 냉정하게 관찰하기는커녕, 대상 속으로 빨려들어가 그 대상과 하나가 되고 만다는 것이었다.' 모든 시인은 길고 오랜 이야기를 갖는다. 이씨의 글은 한 시인이 차마 또렷이 부를 수 없는 노래를 대신 부른 것으로 읽힌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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