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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리오리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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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리오리엔트

입력
2003.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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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군더 프랑크 지음 이희재 옮김 이산 발행·2만5,000원"이 책에서 나는 '글로벌학적'(globalogical) 관점을 활용해 지금까지 통념으로 받아들여져 온 유럽중심적 역사서술과 사회이론을 뒤엎으려고 한다. 세계를 아우르는 글로벌한 관점에서 근세 경제사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부분인) 유럽의 세계 경제체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체제 전체의 구조와 동태를 분석하겠다. 역사적 사건을 글로벌한 관점에서 묘사하고 , 동시에 벌어진 동양의 쇠락과 서양의 발흥을 전체 세계사의 지평에서 설명해 보겠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74)의 '리오리엔트'(부제 '아시아 시대의 글로벌 경제')는 '주류 이론에 맞서는 마이너리티'를 자처하며 학계에 던지는 도전장이다. 제목 '리오리엔트'는 유럽 중심적 기존 관점의 완전한 해체와 동양의 세계사의 중심 복귀를 선언한다.

프랑크는 1980년대 국내 사회과학 붐을 일으킨 종속이론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이매뉴얼 월 러스틴과 함께 '세계체제론'을 다듬은 주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필생의 역작으로 완성한 이 책은 1998년 나오자마자 서양 지식인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고 비유럽 지역, 특히 중국과 일본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400∼1800년의 세계경제를 거시적인 틀에서 분석한 이 책은 학계의 통설을 폭파하려는 고성능 폭약의 신관이다.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근대 세계경제와 세계체제는 유럽에서 발전했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유럽인만이 가진 예외적 특성과 능력, 역사가 이런 발전을 가능하게 했으며 아시아는 나중에야 편입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크는 이런 식의 '유럽 예외주의'는 '다분히 인종주의적 신화'이며 '이데올로기적 허구'라고 비판한다. 유럽은 19세기 이전까지 세계경제에서 다른 지역보다 더 중요하지도 앞서 있지도 않았으며, 그때까지 우세를 점한 지역이 있다면 중국이라고 지적한다. 전지구적 차원의 세계경제는 유럽이 '발명' 했다고 주장하는 근대 이전부터 있었으며, '서양의 발흥은 아시아의 쇠락에 편승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서양은 아시아 경제라고 하는 열차의 3등칸에 달랑 표 한 장을 끊어 올라탔다가 얼마 뒤 객차를 통째로 빌리더니 19세기에 들어서는 아시아인을 열차에서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또 아시아가 유럽에 밀린 것은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볼 때 극히 최근의 일이며, 아시아의 저력과 성장세에 미루어 현재의 판세는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그는 많은 역사적 증거를 들어 유럽중심주의에 빠진 기존 이론을 통박한다. 마르크스와 베버를 비롯해 좀바트르, 브로델, 폴라니 등 정치경제학· 사회학·역사학 거장들, 최근 각광받고 있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새뮤얼 헌팅턴, 199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더글러스 C. 노스까지 가차없이 공격한다. 아시아가 유럽에 뒤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로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을 주장한 마르크스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을 유럽의 기적을 만든 유럽만의 특성으로 파악한 베버는 유럽중심주의의 '날조된' 신화를 전파한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과 월러스틴이 함께 만든 세계체제론까지 비판한다. "이 체제의 중심부가 유럽이며, 그 중심부가 점점 확대되면서 나머지 세계가 유럽에 기반을 둔 '세계' 경제로 통합된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월러스틴과 프랑크 이론의 한계였다"는 식이다.

그는 유럽중심적으로 변질한 사회과학과 역사학의 오만과 편견을 공격하면서 현실의 세계경제에서 한 번도 중심에 서본 적이 없는 유럽을 모든 이론의 중심에 놓으려는 서구의 아집을 '벌거벗은 임금님'에 비유한다.

그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 이런 주장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그럼 무엇을 할 것인가. 유럽중심주의의 대안으로 그는 글로벌리즘을 제시한다. 유럽이나 아시아, 어느 한쪽을 중심에 둔 좁은 시각이 아니라 세계 '전체'에서 안으로 파고드는 접근법을 강조한다. 그의 의도는 "통일성 속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축복하는 지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지난한 작업을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을 '이제 막 배를 띄운 초보 항해사'에 비유하고 있다. 그의 배는 격랑을 헤쳐나가야 한다. 이미 파고는 높다. 이 책은 논란과 격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번역본 출간은 그 해일의 한국 상륙을 알리는 신호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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