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신간의 하나로 근대 건축의 최고 거장으로 꼽히는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도시계획’(동녘)을 소개할 생각이었다. 78년 전인 1925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은 건축학도의 필독서로 자리잡은 고전이다.한국어판은 처음이어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책을 들춰보고 빼기로 했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 탓에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많았기때문이다.
“소심한 열정을 자극하기 위해, 기대 속의 힘을 대담하게 하기 위해, 민주적 타협과 침체의 엄습에 열정과 힘을 주기 위해, 과거의 노고로부터 우리에게 베푼 능력을 명쾌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151쪽)
“여러분은 여러분의 집에서 관리인의 행사에 대항하여 그 영향에서 벗어나거나, 아니면 이 수호신의 곁에서 여러분의 사면(赦免) 상태에 따라, 심술궂은 관리인에게 들볶이면 된다”(222쪽)
이게 무슨 소린지. 르 코르뷔지에의 글이 대화체의 연속인 데다 문장이뚝뚝 끊어지는 데가 많아 번역이 고생스러웠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된다.
그러나 번역이 단순히 사전의 낱말풀이 조합이 아닌 이상 뜻이 통하도록자연스럽게 옮겨야 하는 건 기본이다.
번역의 몫이 기대에 못 미친 것은 역주에서도 드러난다. 알프스 산맥의댐 건설 현장에서 ‘바랄라를 건설한 거인들에 대한 4부작 가극을 떠올린다’는 구절(155쪽)의 ‘바랄라’에 붙은 역주는 ‘스칸디나비아의 신화로, 영웅적 전사자가 가는 천국’으로 되어있다. 이 구절은 바그너의 4부작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언급한 것이다. 정작 필요한 역주의 핵심이빠진 셈이다.
이 책의 흠을 발견한 것은 유감스럽다. 다른 번역서에서도 비슷한 잘못을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오역이나 껄끄러운 문장 뿐 아니라 번역자의 인문학적 소양 부족을 드러내는 증거도 자주 보게 된다.
이달 초 나온 ‘미국은 영원한 강자인가’(일송_북)라는 책은 프랑스 학자 에드가 모랭을 ‘에드거 모린’으로, 미국 작곡가 아론 코플랜드를 ‘아롱 코플랑’으로 표기해 프랑스어와 영어를 바꿔 쓰기도 했다.
번역자가 실수를 저질렀다면 출판사의 편집ㆍ교열 과정에서라도 바로잡았어야 한다. 그런 꼼꼼함과 성실함 없이 책을 낸다는 것은 불량품 생산일뿐이다.
번역은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원서도 번역이 신통치 않으면 ‘말짱 꽝’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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