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정부에서 가장 큰 지각변동이 일어날 곳은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등 이른바 권력기관들이다. 수사권 또는 조사권을 갖고 있어 사정기관으로도 불리는 이들 기관은 지금 당장 환골탈태를 요구받고 있다.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개혁의 관건은 정치적 독립 또는 중립이지만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 대통령의 의지나 지침은 서슬 퍼렇다. 노 대통령은 검찰을 겨냥, "서열을 존중하지 않겠다"고 했고 국정원을 향해서는 "과거처럼 권력을 행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했다.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권력행사가 돼야 한다"고 개혁 방향도 제시했다. 정권을 위해 권력기관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 출범 당시엔 중립화 기치를 내걸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슬그머니 없던 일이 되고, 결국엔 또다시 정권을 위해 봉사토록 해온 과거와는 다르다.
국정원은 조직과 기능에 대한 외과적 대수술이 예상된다. 노 대통령은 "국가의 비약적 발전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창조해 나가고, 해외차원에서 역할 강화로 국가이익에 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방향이라면 끊임없이 사찰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국내 동향 정보 수집 기능의 대대적인 축소가 불가피하다. 반면 해외정보 기능은 대폭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정권 안보를 위한 기능을 없애고 국가 발전에 필수적인 각국의 통상 정보 등 해외정보 기능 위주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조직 정비과정에서 대규모 인원 감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제도 개편을 맡고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당초 조직을 수술한 뒤 국정원장을 임명하려 했으나 국정원 내부에 대한 정밀한 파악이 어려워 새로 임명할 국정원장과 함께 개혁 작업을 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신임 국정원장이 임명되는 순간부터 국정원은 대변혁의 길에 들어서는 셈이다.
검찰도 법무부 장관에 서울지검 부장검사와 기수가 비슷한 40대의 민변 출신 강금실(康錦實) 변호사가 임명되면서 태풍의 눈에 놓였다. 노 대통령은 각료 인선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 시점에서 국민을 위한 검찰로 다시 태어나라"고 주문했다. 기수와 서열에 안주하며 권력의 눈치나 보고 조직 보호에 충실했던 구태를 벗고 국민을 위한 검찰로 거듭나기 위한 자율개혁을 하라는 취지다. 노 대통령은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껏 수사하는 것만이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를 위해 검찰의 이익을 옹호하고 대변해온 법무부를 검찰에서 떼어내 본연의 기능을 하도록 돌려놓음으로써 막강한 검찰권의 남용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만만찮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 장관 임명을 밀어붙인 취지다. 따라서 법무부의 차관이나 실·국장 등이 비검찰출신의 전문 행정관료들로 채워지고 검찰에 대한 업무 감찰권은 법무부로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경찰도 수사권 독립과 자치경찰제 도입 문제 등으로 변화의 가시권에 놓여있다. 하지만 자치경찰제 도입은 지방분권과 연계될 수 밖에 없어 국정원이나 검찰 보다는 조금 시간을 벌었다.
국세청장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정권을 위해 선택적인 조사를 했기 때문에 권한이 막강했다"면서 "그러나 앞으로는 법대로 직무를 행사하면 고달프고 별볼일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세무조사권을 휘둘러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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