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질치는 한국육상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1980년대 아시아 최고의 스프린터 장재근(41). 육상인이라기보다 에어로빅 강사, 홈쇼핑에서 상품 프로모션으로 오히려 더 친숙했던 그가 국가대표 육상코치로 트랙에 복귀했다. 1월 24일 임명장을 받자마자 태릉선수촌으로 달려간 그는 벌써 한달째 선수들과 합숙하며 트랙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지금은 한국육상의 암흑기입니다. 제가 85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세운 200m 한국기록(20초41)이 18년이 흐른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서말구 선배가 79년 멕시코 유니버시아드 대회서 세운 100m(10초34)기록은 24년째 요지부동입니다."
그는 선수들에 대한 '잔소리'를 멈추고 한동안 열변을 토해냈다. "100, 200m단거리 대표가 2명에 불과합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육상경기연맹을 '졸라서' 1명을 열외로 추가 시켰습니다."
그는 육상이 이렇게 참담한 지경에 놓인 것은 비인기종목이라는 이유로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기업들도 '돈 되는' 마라톤에만 집중 투자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실업팀에서 운영하는 단거리 육상팀 조차 한곳 없는 실정"이라며 "육상은 모든 스포츠의 기초인 만큼 국가 차원에서 육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0년간 국가대표 간판스타로 이름을 날리다 90년 은퇴한 그는 96년에 잠깐 육상코치로 일한 경력을 빼고는 줄곧 '외도'를 해왔다. "82, 86년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2개를 따냈지만 막상 은퇴하고 나니 갈 곳도 할 일도 없었습니다. 방송국에서 에어로빅 강사제의가 들어와서 얼떨결에 시작한 것이 방송생활이었죠. '돈 때문에 육상을 버렸다'는 비난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육상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단 한순간도 잊어 본적이 없다고 했다.
트랙에서 선수들과 함께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는 그는 올해 목표를 8월 대구U대회와 9월 아시아선수권 결선진출에 두고 있지만, 장기적으론 후배를 통한 자신의 한국기록갱신을 위해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저의 노하우를 트랙에 쏟아부으면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태극기를 올리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습니다."
/최형철기자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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