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지음·우승우 그림 열림원 발행·7,500원"불빛은 제가 불빛인 줄 알았을까. 붉은 꽃 속에서 제가 밝혀져 있었던 것을 알았을까."
연등회에서 본 붉은 꽃에 홀렸다. 꽃을 따라가다가 동생을 잃어버렸다. 꽃은, 실은 연등이었다. 동생을 찾고 나서 작은오빠에게 뺨을 맞았다. 그 동생은 일찍 죽었다.
그림과 소설을 함께 엮어 '시설(詩說)'이란 이름으로 선보인 한강(33)씨의 중편소설 '붉은 꽃 이야기'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불빛을 품은 붉은 꽃은 삶을 끌어안은 죽음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까 주인공 선이가 붉은 꽃을 보고 품은 강렬한 매혹은 죽음에 대한 매혹과 같은 것이다. 죽음의 이미지를 너무 빨리 봐버린 탓인지 선이는 어린 동생을 일찌감치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다.
수학선생에게 뺨을 맞고 흘린 피, 처음 시작한 생리의 혈흔 등 붉은 빛은 소설 곳곳을 스쳐간다. 연등회에서 삶과 교차하는 죽음을 본 선이는 출가를 결심한다. 그날 밤, 연등을 들고 벼랑을 걸어가는 꿈을 꾼다.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서 있는 선이의 등을 누군가 떠민다. 괜찮다, 앞으로 가라, 앞으로 걸어가. 꿈은 한발짝만 내디디면 죽음이 있다는 것, 그만큼 삶과 죽음이 가까이 벗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소설은 짙은 불교적 색채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건드린다. 작가는 상징과 이미지 위주의 문체로 그것을 보여준다. "밝은 봄날, 반쯤 열린 꽃들 속에서 스며나오는 빛을 본 적이 있었다. 저런 빛깔의 목련도 있었나, 의아해 하며 떨어진 붉은 꽃잎 하나를 주워 코 끝에 대어 보았었다." 꽃은 피었다가 시든다. 그리고 다시 핀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반복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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