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기야디야! 부딪치는 파도소리 잠을 깨우니…"27일 도쿄(東京) 간다(神田)의 소극장 'Y스페이스'에는 일본 배우들이 부르는 우리 뱃노래가 넘실댔다. 26일부터 숭실대 이반(60) 교수가 극본을 쓴 연극 '그날, 그날에'를 무대에 올렸기 때문이다. 3월2일까지 계속되는 공연은 대사는 일어로 번역됐지만 '은정주점'이라는 한글 간판과 한복차림으로 소주잔을 기울이는 배우들의 연기에서는 한국적 정취가 가득 묻어난다.
실향민 문제를 다룬 이 연극은 3·1운동 정신을 기리는 일본 연극인들의 모임인 3·1회가 3·1절을 앞두고 막을 올려 더욱 관심을 끌었다. 3·1회는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제대로 알자는 뜻에서 2000년 일본 연극계 원로인 고(故) 다카도 가나메씨를 중심으로 극단 '세대', '동인회', '배우좌' 등에서 활동하는 30여명의 진보적 기독교계 중견 연극인들이 모인 단체다. 2000년 3·1절에는 제암리 학살사건을 다룬 '총검과 처용무'를 공연하기도 했다. 'Y스페이스'는 3·1 운동을 촉발한 '2·8 독립선언'의 무대였던 재일본 한국YMCA 건물 지하에 있는 뜻 깊은 장소이다.
'그날…'은 1971년 2월의 강원도 속초를 배경으로 월남한 실향민 김 노인과 박 선장, 북청댁을 중심으로 세대 갈등과 실향민의 아픔을 담았다. 홀로 월남한 박 선장은 고기잡이에 관심이 없고 고향만 바라보다가 선원들을 바다에 버리고 월북해 버린다. 북청댁은 주점을 운영하며 실향민의 애환을 담고 산다. 김 노인은 고향에 돌아가야 새집을 짓는다며 서울로 유학 한 후 은행원이 돼 돌아온 아들의 상경 요청을 거절한다. 김 노인의 아픔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유명을 달리한 어머니의 시신을 고향에 묻어야 한다며 다락방에 모셔둔 데서 절정을 이룬다. 이 작품은 1979년 제3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문공부 장관상, 희곡상,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관객의 반응도 뜨거웠다. 3,000엔 정도인 다른 연극보다 비싼 4,500엔의 입장료를 받았지만 200여 석이 거의 유료관객으로 찼다. 딸과 함께 온 쓰다 미야코(49·여)씨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슬플 애(哀)자를 써 보였다. 현지 연출을 담당한 이토 가쓰아키(57)씨는 "일본의 많은 분들이 3·1회를 도와주고 있다"며 "지속적 자체 제작을 통해 한일 양국간 교류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물론 문화 차이에 따른 한계는 남았다.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광복과 분단, 한국전쟁 등을 슬라이드로 보여주고 연극을 시작했지만 연극배우 히라타 도모에(45·여)씨는 "일본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렵다"고 말했다. 관객의 대부분이 40이 넘은 장년층이어서 젊은 세대로 관객층을 넓혀야 하는 과제도 남겼다. 3·1회는 내년 3월께 서울과 속초에서도 같은 작품을 공연할 예정이다.
/도쿄=홍석우기자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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