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3월1일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도쿄(東京)에서 태어났다. 1927년 몰(沒). 아쿠타가와는 35세에 한 움큼의 수면제를 입에 털어넣고 자살했다. 그는 '어떤 옛 친구에게 보내는 수기'라는 제목의 유서에다 자살의 동기를 '내 장래에 대한 어떤 몽롱한 불안'이라고 썼다. 아쿠타가와의 자살은 1936년의 마키노 신이치(牧野信一), 1948년의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70년의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72년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로 이어지는 일본 현대문학 공간 속의 자살에 시동을 걸었다.아쿠타가와는 도쿄(東京)대학 영문과 재학 중에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문하에 들어가 구메 마사오(久米正雄), 기쿠치 간(菊池寬) 등 동료들과 제3차 '신시초(新思潮)'를 발간했다. 그는 이 잡지에 처녀작 '노년(老年)'을 발표했으나 문단의 눈길을 끌지 못하다가, 대학을 졸업한 해 제4차 '신시초'에 발표한 '코(鼻)'가 스승 나쓰메의 추천을 받으면서 정식으로 등단했다. 여느 사람보다 코가 아주 긴 젠치 나이구(禪珍內供)의 내면을 통해 인간의 허영과 위선, 이기주의를 해학적으로 그린 이 작품은 아쿠타가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매우 복잡한 가정 환경 속에서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아쿠타가와는 자란 뒤에도 늘 신경쇠약에 시달렸고, 자신의 작품 속에다 유미주의적 세계관의 한 극단을 구축했다. 그가 명성의 절정기에 자살한 것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근대'를 정면에서 응시하기가 너무 힘겨워서였는지도 모른다. 가까웠던 벗 기쿠치 간의 주도로 1935년 분게이 슈사(文藝春秋社)가 제정한 아쿠타가와상은 프롤레타리아 문학 이외의 작품을 대상으로 한 일본의 대표적 신인문학상이다.
고 종 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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