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희 지음·정정엽 그림 열림원 발행·7,500원정정희(39)씨의 중편소설 '공룡'을 두고 평론가 권명아씨는 "낭만적 사랑에 관한 한 여자의 환상과 그 깨어짐의 아픈 기록"이라고 말한다. 소설은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그 아이를 낳기까지 한 여자가 시달리는 불안한 심리를 그린 것이다. 여자에게 불안의 근원은 남편으로 대표되는 바깥 세계이다.
여자는 남편을 가리켜 공룡이라고 부른다. "그는 생활이나 일상, 햇빛, 특별한 애정, 자신이 육체를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 등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유폐된 채 하루하루 퇴화되어 가고 있었다.
아마도 저 공룡이 종국에는 퇴화되어 껍질이 벗겨지고 부패한 속살이 드러날 때까지 나는 그를 용서할 것이다." 용서하고 후회하고 또 용서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여자의 감각은 닳아져 간다. 그리고 뱃속의 아이는 점점 커져 간다.
모든 관계는 낭만적 사랑으로 시작된다. 자신에게 찾아온 특별한 천사인 줄 알았던 남편은 공룡으로 변해간다. 그런 남자를 두고 여자의 감정은 어찌할 수 없이 끈적거린다. 여자는 아이를 남편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를 꼭 닮은 아이를 나는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는 자주 나를 슬프게 하고 심지어는 아프게 하는데 그와 꼭 닮은 작은 인간이 나에게서 튀어나와 다시 나를 슬프게 하고 아프게 만들면? 사랑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쓸쓸히 웃기만 하면?" 변질되는 사랑의 색깔을 견딜 수 없어서 여자는 배부른 몸으로 술을 마신다. 불꺼진 밤에 중얼거린다. 이 시간은 지나갈 거라고. 결국은 아무튼 지나갈 거라고. 그렇게 간절히 다짐하는 순간이 낭만적 사랑이 끝난 때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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