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게 떡이에요! 케이크인줄 알았어요."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빌딩 지하 2층의 떡카페 '미단'에 가면 자주 듣는 탄성이다. 점심 식사후 디저트로, 오후 3∼4시쯤 간식 삼아, 퇴근길 아내와 아이들에게 갖다 주려 떡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죽과 함께 아침 식사 대용으로 떡을 먹거나 아예 점심으로 대신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크고 뭉툭하고 푸짐하고, 때론 고물이 뚝뚝 떨어지는 떡은 이젠 옛말이다. 작고 앙증맞고 예쁜 떡이 속속 등장하면서 평소 떡을 즐겨 찾지 않는 이들도 입맛을 다신다. 케이크인지 떡인지 모양조차 헷갈리는 것들도 많다.우리 고유의 전통 음식인 '떡'이 변신중이다. 포장이나 박스 또한 세련되고 깔끔해지면서 떡을 선물용으로 찾는 이들도 늘어났다. 케이크나 빵을 받았을 때보다 반응이 훨씬 좋다. 그동안 빵의 입맛에 길들여져 온 신세대나 외국인들도 떡의 맛과 묘미에 반하기 시작했다.
떡의 반란
신라호텔과 무주리조트에서 20년 근무하다 2000년 스타타워빌딩에 '미단'을 연 김순희(44)씨는 "떡의 새 문화는 신세대 젊은이들이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중장년 '아줌마'층에서나 떡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 젊은이들이 우리의 떡 맛을 알기 시작했다는 것. 그는 "빵과 케이크에만 입맛이 익숙한 젊은 층들이 앞으로 우리 떡의 신 수요계층"이라고 평했다.
지화자 질시루 동병상련 등 역시 비슷한 유형의 떡카페. 현대적 감각과 전통미를 살린 세련된 인테리어에 고객들 또한 젊은 계층이 주류다. 지화자의 한용규 사장은 "그동안 젊은이들이 떡을 접해볼 기회가 많지 않아 떡을 멀리한 것"이라며 "일단 맛을 알게 되고 익숙해지면서 빵이나 케이크 보다는 우리 떡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백화점에 근무하는 양경욱씨는 "최근 장인 생신때 떡 상자를 선물했는데 막상 케이크인줄 알고 받아든 어르신이 한입 드시고는 대단히 좋아해 오랜만에 효도를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탈바꿈하는 떡
큰 떡은 싫다. 한 입에 쏙 들어갈 만큼 작고 탐스러워야 사람들의 입맛을 붙잡아 둘 수 있다. 그래야만 모양도 예쁘게 나온다. 단자나 경단 모양에 홈을 내 잣이나 대추 썬 것을 꽂아 놓거나 땅콩가루를 겉에 묻혀 놓은 모양, 안꼬를 밖으로 내 김밥처럼 말아 넣은 것 등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질시루의 이민선 연구원은 "그저 우리 음식이니까 지켜야 된다는 주장은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 보다는 예쁜 모양과 맛으로 입맛을 유혹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떡을 케이크 모양으로 만드는 것도 이젠 기본이다. 핑크빛 하트 모양의 떡케이크에 아로 새긴 '사랑의 메시지', 삼색 경단 케이크 속에 수줍게 피어난 듯한 하얀 장미, 노란 개나리 색 떡 위에 앉아 있는 듯한 자스민 꽃 등 떡케이크는 이제 예술품의 경지에 이르렀다.
초콜릿이나 딸기 마카다미아 같은 견과류, 헤이즐넛 등 케이크에나 쓰이는 재료들도 이미 떡과의 도킹을 시작했다. 젊은 연인 대부분이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때 떡으로 연인에게 선물하는 모습을 볼 날도 멀지 않은 듯. 포장도 튄다. 종이나 스티로폼에 떡을 얹어 떡 맛을 떨어뜨리는 실수는 이제 하지 않는다. 초콜릿 선물박스의 원형을 그대로 사용해 선물세트를 만들거나 케이크를 담아두는 투명 플라스틱에 떡이 전시된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다.
떡의 미래
"앞으로 10년 후면 동네마다 들어서 있는 떡카페를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떡 카페의 주인들은 한결같이 "떡과 빵의 전쟁이 시작됐다" 며 이같이 말한다. 떡이 예뻐지고 입맛을 사로잡는데 누가 떡을 외면하겠는냐는 것이다. 이미 떡카페의 명성이 높아졌고 그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지금 우리 떡 맛을 즐겨 찾는 계층은 젊은 신세대들. 지화자의 황건 차장은 "이들이 앞으로 우리 떡문화를 이끌 첨병 역할 을 하게 될 것" 이라며 "베이커리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신세대 떡집인 떡카페가 들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
떡 카페·떡케이크 전문점
미단 (02)2112―2983
질시루 (02)741―0258
지화자 (02)575―3987
떡이 있는 전통찻집
한상 (02)720―9500
차가람 (02)3672―5711
●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교수
"김치 다음으로 세계화시킬 수 있는 우리 음식이 바로 떡입니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55) 교수는 '떡 전도사'로 통한다. 부설 평생교육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떡 만들기 강좌를 열고 있는 그는 떡카페 '질시루'의 CEO다. 떡·부엌살림 박물관도 그가 설립, 운영하는 시설.
그는 "우리고유의 떡 문화가 총체적으로 바뀌는 것"이라며"단순히 떡의 모양이 예뻐지고 작아지고 포장이 그럴 듯 해지는 외형상의 변화로만 봐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지금 젊은 신세대들이 떡을 좋아하고 있고 수준높고 세련된 떡카페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떡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게 높아지리라는 것이다.
실제 옛날 선조들은 '밥위에 떡' '밥배 따로, 떡배 따로'라고 했다. 밥보다 떡을 더 귀하게 대접한 것이다. 어릴 적 밥을 먹고 떡 한 그릇을 뚝딱 비웠던 추억이 지금 중장년들에게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윤 교수 자신도 떡을 즐겨 먹는다. 한 때 위장이 안좋았는데 매일 아침 떡 2조각과 우유를 먹으면서 탈 많던 위장도 좋아졌다. 그는 "떡으로 시작하면 하루가 든든하다"고 말한다.
그의 떡 예찬론은 끝이 없다. "떡은 밀가루와 버터 설탕이 주재료인 빵과 달리 찹쌀과 멥쌀로 만듭니다. 채소와 과일 밤 대추 인삼 치자 생강 등 한약재와 콩고물 팥고물 녹두 등 두류도 함께 사용돼 영양 면에서 훨씬 뛰어납니다" 떡에는 탄수화물 비타민 무기질 지방 단백질 등 5대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어 살이 찔 걱정이 거의 없다.
또 인공감미료나 색소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떡만이 가진 장점이다. 무엇보다 찐 떡을 냉동고에 넣어 보관하다 꺼내 녹여 먹으면 원래 맛이 그대로 살아난다. 반찬없이도 먹을 수 있고 싸서 들고 다니기에도 간편하다. 그래서 그는 떡 만들기 강좌에 열심이다. 그가 지난해 설립한 부설 평생교육원에 다니는 수강생만 수백명이다. 집에서 떡을 만들어 보려는 이들은 물론 떡 카페를 차려 보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강좌에는 외국인들도 참가해 한국의 떡 문화를 익힌다. "빵 케이크는 서양음식이지만 떡은 우리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떡 문화를 되찾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박원식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