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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임명 의미/문화권력 "순수"서 "대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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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임명 의미/문화권력 "순수"서 "대중"으로

입력
2003.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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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이창동 감독을 39대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했다. 정치인이나 관료를 제외한 언론인, 평론가, 문인 출신이 장관를 맡았던 관례에 비추어 대단히 이례적인 인사다. 이 감독의 문화부 장관 임명은 우리 문화계의 힘의 중심축이 순수문화에서 대중문화로 꾸준히 이동하고 있는 흐름을 상징하는 예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이 신임 장관은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 상영 일수) 축소 반대 운동에 앞장섰고, WTO 문화 양허안 제출에 반대한 이른바 진보 세력의 대표적 인물이다. 노 대통령과의 인연이나 개혁성으로 따져 보아서는 의외의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상징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기 어렵다.권력은 총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의 가방 안에 들어 있기도 하다. 1970·80년대 대학생들은 가방에 소설책이나 평론집을 넣고 다녔고, 90년대에는 워크맨으로 바뀌었으며, 2000년 이후 휴대전화와 영화 잡지 위주가 됐다.

원용진 서강대 신방과 교수는 예술인의 세력화론을 내세웠다. "이창동으로 대표되는 영화계 개혁 세력의 등장은 문선대 역할을 해 왔던 대중 예술이 이제는 독자적이고, 주도적인 세력으로 성장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서태지가 우리 사회에서 대중 예술인의 독자적 목소리를 낸 첫 인물이라면, 이창동 감독은 입각이라는 방식으로 또 다른 의미의 독특한 목소리를 냈다"고 설명했다.

즉, 서태지가 기성세대에 대한 신세대적 가치를 노래에 실어 전파했지만 그의 영향력이 문화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창동 감독을 필두로 한 개혁적 대중문화 세력은 정치 세력을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바로 정치 세력, 그 자체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라는 뜻이다.

이준익 씨네월드 대표는 '영화 중심론'을 폈다. "시사주간지 '타임'이나 하드 커버 평론집을 들고 다녀야 교양인 행세를 하던 시절의 끝자락인 90년에 이어령씨가, 서태지로 대변되는 신세대 문화의 정점인 2000년에 대중성 강한 소설가인 김한길씨가, 영상 시대에 이창동씨가 문화부장관을 맡게 됐다는 건 우리 문화의 주요 생산 기반과 중심축이 지식인 중심의 순수문화에서 대중문화, 특히 그 꽃인 영화로 자리를 옮겨 왔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역대 문화부 장관 명단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90년 이전 임명된 28명의 문화공보부(처) 장관 가운데 문화예술인은 김활란(여성운동가), 이진희 이원홍 이웅희 최병렬(언론인) 정한모(시인) 등이다. 이들은 정권의 이해에 대한 고려에서 발탁된 인물이다.

반면 한국 교양인의 필독서를 많이 내온 평론가이자 소설가인 이어령(90년 1월∼91년 12월)씨, 대중 취향의 소설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여자의 남자'를 발표하고 TV 사회자로도 대중적 인기를 끈 김한길(2000년 9월∼2001년 9월)씨를 거쳐 소설가 출신으로 영화 '오아시스'로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이 감독이 문화부 장관에 발탁된 것은 문화예술계 출신 장관이 계몽주의적 평론가에서 대중예술인으로 옮겨 온 뚜렷한 흐름을 드러낸다.

물론 대중예술인의 장관 임명에 대한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행정 경험이 없는 데다 경직된 대외 시각이 외국과의 갈등을 부를 수도 있으며 결과적으로 순수문화 영역이 더욱 위축되리라는 걱정이다. 그러나 이창동 감독의 장관 임명은 우리 문화를 무엇보다 대중문화가 견인하고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눈앞의 현실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이창동은 누구

영화 '오아시스' 촬영 때의 일화. 주인공 종두 역을 맡은 설경구가 보통 사람처럼 연기하자 이창동 감독은 "너는 종두가 정상인으로 생각되느냐"고 물었다. 이게 아닌가 싶어 약간 바보처럼 행동하자, 이번에는 "너는 종두가 바보라고 생각하니"라는 질책이 돌아왔다. 정말 미칠 것 같았던 설경구는 이창동 감독을 보고 '변태'라고 쏘아 붙였다.

이창동 신임 문화관광부 장관과 일해 본 사람은 아주 부드럽게 표현하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그의 집요함과 고집에 처음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그를 조금씩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자꾸 그 변태에게 빠져든다"는 설경구의 말대로다.

그의 집요함은 타인을 배척하는 고집이나 독선과는 다르다. 소설이든 영화든 완벽을 향한 끝없는 자기 몸부림이다. 완벽주의는 자신의 인생 행로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그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진 못 한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교직을 떠났고, 감독이 되기 위해 소설을 접고서야 마흔 넘은 나이에 영화에 뛰어들었다. 10년 동안 소설 3권, 또 10년 동안 영화 3편이란 '과작(寡作)'도 그런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만큼 결과도 남달라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로 1992년 한국일보 문학상, 영화 '오아시스'로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차지하는 놀라움을 주었다.

그의 꿈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과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수단으로 그는 소설을 택했고, 보다 영향력이 큰 영화로 다시 옮겼다.

평소 "남들은 쉽게 가는 길을 참으로 힘들게 가고 있다"고 말하던 그가 예술이 아닌 정치·행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사람다운 세상을 위한 이야기를 나누고 제대로 그 길을 찾아낼지 궁금하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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