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조각 내용을 지켜본 공직자들은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공직사회를 떠받쳐 온 연공서열식 인사관행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던 국민의 정부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나이로만 보면 중앙부처의 행시 출신 서기관급에 불과한 40대 군수 출신의 행정자치부 장관 발탁이나 서울지검 부장검사와 기수가 비슷한 40대 여성 변호사의 법무부 장관 기용은 앞으로 노무현 정부의 공직인사 운용을 가늠케 하고도 남는다.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라는 공직자 배출 시스템에 따른 공직 서열체계를 과감히 파괴한 것이다. 검찰이나 법원 등 법조계의 경우 그동안 기수를 무시한 인사 관행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제부총리도 행시 기수를 9회나 훌쩍 뛰어넘어 기용됐다.
기존의 공직사회에서는 대단한 파격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장관 후보 가운데는 비명문대나 지방대 출신 뿐만 아니라 대학 중퇴 출신까지 포함됐다. 학력보다는 능력이 인사의 중요한 기준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런 양상은 공직사회에 일대 회오리를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법과 제도가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제대로 된 사람만 있으면 미흡한 제도를 충분히 보완하고 바람직한 관행을 정착시킬 수 있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인사관이다. 제도나 운용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문제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경험을 들어 "장관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부처가 바뀔 수 있다"며 "인사가 만사"라고 강조해왔다.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중앙인사위를 방문, 방명록에 '적재적소(適材適所)'라고 적은 데는 이 같은 인사관이 함축된 것으로 보인다.
종전에는 공직 부적격자로 취급됐던 인사들의 각료 포진도 공직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 제도권과는 거리가 먼 대안학교 교장이나, 민주노총 부의장 출신이 장관 후보에 오르고 시민운동 경력만 있는 인물이 제도권 공직자의 인사추천을 맡는 사회세력의 '역전 현상'이 공직자의 가치관에 혼동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관행의 파괴는 또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적용했던 다면평가제의 전면 도입이다. 다면평가제는 전통적으로 각 부처 장·차관의 전유물인 인사권과 상급자에게 주어진 인사평가권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기존 공직사회의 틀을 근본적으로 깨는 것이다. 또 상하좌우가 서로 평가를 함으로써 공직사회의 분위기도 획기적인 변화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면평가제의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어떤 인사제도보다 부작용이 적다는 게 노 대통령의 지론이다.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공직사회가 갈림길에 들어선 것이다. 스스로 전통적 인사 방식의 타파에 나서 변화의 중심에 설 것인지, 아니면 소극적 대응으로 외과적 수술을 받을 것인지. 어떤 경우든 공직사회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밖에 없지만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도 있다. 고건(高建) 총리가 취임 일성으로 "공직사회부터 먼저 변화와 개혁에 앞장서고 공직자 모두가 개혁의 주체가 돼 달라고 촉구해 나가겠다"고 밝힌 것은 저항보다는 시류 변화에 따라 능동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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