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정부는 북한 핵 위기라는 삼각파도 위에서 출발했다. 파도의 한 축은 민족공조를 내세우고 있는 북한이고, 다른 한 축은 국제공조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려는 미국이다. 거센 파도를 타면서 노 대통령은 양립하기 어려운 두 지향점의 접점을 암중모색하고 있다.노 대통령은 25일 취임식에서 평화와 번영에 기초한 동북아 시대의 도래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비전도 북핵문제라는 파도를 넘어서지 못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뿐 아니라, 도리어 동북아 전체의 안보 위기라는 극한 상황을 맞게 된다.
노 대통령은 일단 북한의 핵 개발을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평화적 해결이라는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첫날 정상외교에서 이 같은 기조의 해법을 시도해 본 듯하다. 그는 미국에는 군사적 제재를 반대한다고 분명히 못 박은 반면, 중국에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역할'을 강조, 사실상 미국의 선택을 견제해 줄 것을 부탁했다. 러시아와 일본 등에도 평화적 해결에 협조해 달라고 했다. 험난한 외교적 줄타기가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북한 핵 불용과 평화적 해결이라는 두 원칙은 모순을 안고 있다. 핵 개발을 용인할 수 없다면 그 반대 상황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있을 법한데, 대북 압박에는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핵 문제의 당사자로서 당연한 태도이지만, 테러와의 전쟁을 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시각에서 보면 논리적 취약성을 노출시킨 것이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범죄자가 아닌 협상 상대'로 규정한 북한이 핵 동결 복귀 선언 등으로 먼저 움직여 줘야 하는데, 이 또한 아주 불투명해 보인다. 북한은 현재 플루토늄 추출로 직결되는 핵 재처리 시설을 가동하지는 않았지만, 미국과 유엔의 대응 수위에 따라 벼랑 끝으로 더 다가설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선택의 시한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우리 정부의 입지는 점점 줄어드는 형국이다. 유엔 안보리는 내달 초부터 북한 핵 문제를 다루며 단계별로 대북 압박 수위를 높여나갈 것이다.
노 대통령의 북한 핵 문제 해결 과정은 특히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갈등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도전이고 실험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노 대통령을 만난 뒤 "선택 가능한 옵션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해 사실상 양국간 시각차를 인정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 이상으로 완고한 미국을 설득해야 북한 핵 파고를 넘어설 수 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미국에 대해 상당한 강도의 '자기 목소리'를 낼 것 같다. 대등한 한미관계는 노 대통령의 오랜 철학이다. 이미 그 연장선상에서 주한미군 재배치 및 역할 변경,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보완 문제가 한미 간에 논의되기 시작했다.
우려되는 것은 이 같은 노 대통령의 명분과 의욕이 북한 핵 문제는 물론이고 한미관계, 나아가 한반도 안보에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다. 미국의 대 테러전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국제질서 속에서 자칫 외교적으로 고립돼 원치 않은 피해를 볼 개연성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미간 이견이 첨예화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까지 대두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경우 노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는 중도파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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