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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원칙"이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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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원칙"이 전부는 아니다

입력
2003.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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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출범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한마디 당부의 말을 덧붙이고자 한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 시절 그의 프로필을 보니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김구와 링컨이라고 쓰여 있었다.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존경하는 인물'이다. 고건 총리 프로필에도 마찬가지로 쓰여 있다.뿐만 아니다. 몇 해 전 한 신문사에서 21세기 한국인의 사표가 될만한 인물이 누구인가 하고 여론 조사를 했는데, 김구 선생이 단연 1위로 꼽혔다. 또 최근 베스트셀러 집계에도 '백범일지'가 2위에 올라 있다.

김구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켰고, 임시정부가 어려울 때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성공시켜 임정을 되살렸다. 또 해방 이후 귀국해서는 초지일관 신탁통치에 반대하였고, 분단정부 수립에 반대하였으며, 이를 막기 위해 통일운동에 매진하다 흉탄에 맞아 서거하셨다.

그가 해방 직후 쓴 '나의 소원'은 그의 민족주의 사상을 집약한 글이다. 그는 우리 민족의 철저한 자주독립을 염원하였고,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체제에 반대하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수립을 원하였다. 또 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닌 개방적 민족주의를 주창하였으며, 부강한 나라보다는 문화적으로 수준이 높은 문화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구는 애국자로서, 독립지사로서, 민족주의자로서 20세기 한국 민족의 사표가 될만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김구는 정치지도자로서는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해방 직후 신탁통치 문제가 나왔을 때 김규식, 여운형 등이 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그는 철저히 반대 입장에 섰다. 결국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 문제로 이슈가 집중되어 미소공동위원회는 파행으로 치닫고,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규정한 임시정부 수립은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되었다.

1946년 여름 김규식과 여운형이 미군정의 지원을 받아 좌우합작을 추진하였을 때 김구쪽도 결과적으로는 이에 찬성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1947년 초부터 미소간의 냉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1946년의 미소공동위원회와 좌우합작운동은 우리 민족에게는 통일정부를 세울 마지막 기회였는데, 김구는 이를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한국문제는 유엔(UN)으로 넘어갔고, 유엔은 한국에서 총선을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김구는 이를 환영하였으나, 소련이 북한지역에서의 총선을 거부하리라는 것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미소간 냉전의 시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분단정부의 수립이 목전에 다가오자 김구는 이를 막기 위해 남북협상에 나섰다. 이는 통일된 민족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철저한 민족주의자 김구로서는 당연한 행로였다. 하지만 남북협상은 냉전의 벽 앞에 무력하였고, 1949년 김구는 냉전추종세력의 총탄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해방 이후 김구가 걸어간 길은 민족주의자, 자유민주주의자로서 '원칙'에 충실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치지도자에게는 '원칙'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정치지도자에게는 국제정세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넓은 안목과 이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 감정과 집단이익에 치우칠 수 있는 국민들을 올바로 이끌 수 있는 리더십, 사회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 대한 폭 넓은 지식 등이 모두 요구되는 것이다.

새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북한 핵 문제이다. 새 정부의 지도자들은 민족이익이라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신중하고 유연한 자세로 미국과 북한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고, 부단히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김구 만이 아니라 김규식 여운형,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광해군으로부터도 '지혜'를 빌릴 줄 알아야 한다.

박 찬 승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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